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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60호> 다시 봄...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3.

 

 

다시 생명을 깊이 생각하게 되는...

다시 생명의 소멸을, 소멸된 진실을

묻게 되는...

그리하여 그 생명의 자국들에,

그 생명을 향한 그리움에 절절이 울게 되는...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돋는 초록 잎새에 위로받는...

바람 부는 팽목항에 걸려있던

따뜻한 밥 함께 먹고 싶다는 글귀가 생각나,

그 글귀를 손으로 만지던 날

가슴과 목이 꽉 막혀 울 수도 없던

그 순간이 생각나는...

그 글귀가 다시금 생각나

아이와의 사소한 다툼에도, 살아있는데...,

살았는데 하며 다툼의 시간이

더 더 미안해지는...

서로 살아있으니 감사하며

동행으로서 다시 마음을 일으켜 보자 더

스스로를 격려하는...

바다에서 스러져간 자식을 생각하며

손을 움직여 뜨개질하던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사소한 뜨개질 작품을 보며

그들의 시간이,

그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가슴을 닦는...

할 수 있는 것이 딸아이의 새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다시, 다는 것밖에 없어

가슴을 쓸어내리는...

 

, 오가며

잿빛 나무줄기와 갈빛 들판을 배경 삼아

하루하루 초록을 키우는 이팝나무의

연둣빛을 보며

마음설레어

다시 봄을 반가워하는...

 

아침 아이들 등굣길

학교버스 타는 아이들에게

손 흔들고,

혼자 돌아오는 길

시멘트길 위에 올라선

민달팽이를 풀섶 위에 올려놓고

이제 밤 집으로 돌아와

민달팽이를 다시, 생각하는...

민달팽이는

초록 시간을 살고 있을까? 궁금한...

 

금낭화 아래 숨어있는 뱀에게

말 걸던 오전,

따뜻한 마당에서 햇빛 받고 있던

초록 뱀을

빨래 널러 갈 때는 못보고

빨래 다 널고 집으로

들어올 때 갑자기 만나,

깜짝 놀라던 오전,

그는 금낭화 아래 숨었다

그와 내가 서로를

주시하던 시간,

그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던 시간,

기다리다 지친 내가 잠시 뒷간 갔다 온 사이

사라져간 그를,

어디 숨었지?

내일

아이들이 밭에 들어가도 될까? 걱정하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견디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품는...

내가 풍경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 나약함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까?

누군가에게 한 순간이라도 살아가는 힘이 될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질문하게 되는...

이 기록이, 이 기억이

누군가에게 글을 읽는 시간이,

마음에

잠시라도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아이 입에서

꽃마리라는 꽃이름을 듣는...

아이의 작은 손에서 내가 이야기하던 꽃이름을 보는...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함께 보는...

그길을 오가며 아이에게 건네던 수많은 단어들, 이제, 아이에게서 그 단어를 되돌려 듣는...

그 단어들에 위로받는,

그래서 인간이 따뜻한 존재라고 여겨지는...

 

이라는

지금 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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