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같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책, 이타주의자 선언”
이은규
행복하여라, 이타주의자 선언을 집어 든 사람들!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을 뭐라고 부를까요. 이 책에서는 ‘우리'를 많이 쓰는데, 거기에는 특별한 경계가 없습니다. 책을 읽거나, 듣거나, 손가락으로 짚어갈 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경계가 없기에 실체를 정의할 수도 없는 그런 '우리' 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누구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생각공동체입니다. 환영합니다.”(12면)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을 받기란 쉽지 않다. 세월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고 모두가 다 그렇고 그런 시절에 더욱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랬다.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환영합니다’라는 글자가 이렇게도 울컥하게 하다니. 뭐지? 이 말랑말랑한 마음은...
“이 책은 우리 안의 이타적 마음에 대한 책입니다.(...) 답도 없고 가능성만 있는, 그 가능성마저 충만한 것이 아니라 헐겁게 듬성듬성 존재할 뿐인 각자도생과 절망의 시대에 타인을 생각하는 사치를 시도해봅니다. 사치라는 표현은 진심입니다. 타인을 생각하는 존재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19면)
찬찬하고 다정하다 못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서로의 평화를 존중하고 어루만지듯이. 호흡이 빠를 이유가 없다. 첫 눈 맞듯이 가만히 젖어들면 그뿐.
“삶은 언어와 함께 공유됩니다. 타인과 가까워지고, 애태우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노래들에서 우리 자신의 사랑과 아픔을 발견하듯이 좋은 언어는 서로 다른 삶들을 포개어줍니다. 언어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너와 나'의 결합을 지향하는 일입니다. 일상의 말하기에서 편견과 차별의 언어를 지워 나가고 존중과 해방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89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이 사치라 여겨지는 이 시절. 그러나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에게서 광야에서 외치는 이가 겹쳐 보인다. 첫 눈 같은 사람.
“반갑습니다. 심심한 호구들의 모임에 잘 오셨습니다. 심심한 호구들의 특징은 관계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한정된 에너지를 앞으로 나아가는 데 쓰기보다는, 지금 내 발자국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지 실시간으로 살피는 데 더 많이 씁니다. 역동성은 없지만 배려가 강물처럼 흐릅니다. 1미터짜리 줄자를 받아 들고서는 1밀리미터짜리 눈금 안에다가 더 작은 눈금들을 그려 넣으면서 살아갑니다. 왜일까요. 세상에는 1밀리미터보다 작은 삶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아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들에 매혹되어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219면)
무엇보다 이 구절에 가장 깊이 공감했다. 반갑다고 환영받는 ‘심심한 호구’라니.좋았다. 견뎌온 세월이 그저 호구라서가 아니라 심심한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응원’하는 타자를 통해 ‘환대’를 받은 느낌이 좋았다. 깜깜하고 어두운 밤길에 등불을 만난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이타주의자 선언을 집어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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