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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인권연대 숨 '쉬는'강좌

2025 청주에덴원 인권교육 '이타주의자 선언'을 마치며

by 인권연대 숨 2025. 11. 4.
2025 에덴원 인권교육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타심은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겹치는 지점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이타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이타심이 단순히 남을 돕는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임을 느꼈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용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종종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진짜 이타심은 타인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오 님

 

 

이 책은 이타적인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타인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조용히 품게 한다. 나를 중심으로 사유하는 그 자리에서 시선을 조금만 확장하면 타인을 이해하는 문이 열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사회는 눈부신 경제 성장의 이면에 불안증폭사회’, ‘트라우마 한국사회라는 이름을 함께 지니고 있다.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것처럼, 풍요 속에서도 마음이 빈곤해지는 순간이 너무나 많다.

각자도생의 프레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일상의 언어로 조용히 묻는다.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고. 질문은 자연스럽게 내가 속한 공동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둘러싼 타인에게로 향한다. ‘모두가 밝고 행복한 공동체라는 청주에덴원의 미션 또한 이 메시지와 맞닿아 있음을 자각하게 하며, 사랑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하는 일이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능력임을 전하는 저자의 이야기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그 멈춤의 시간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누군가에게 그루터기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했다. 책의 부제처럼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이 나를 통해, 또 우리를 통해 이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선택적 멈춤이 모여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발견하고, 그 마음을 지금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이곳, 청주에덴원에서 조용히 실천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유희정 님

 

 

우선 또 한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점에서 자의든 타의든간에 내 스스로에게 기특함을 느끼고 전과의 책과 비교했을 때 어렵지 않았던 점이 좋았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면 결국은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위해 행동할 때 더 커진다고 알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죽음, 장례식 이런 단어가 눈에 유독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타인의 삶과 죽음 앞에서의 진정한 위로는 패배를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잘 싸웠다고 말해주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의 삶을 내 삶의 열등한 복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억되고 싶었던 모습을 기억해주는 것입니다.”(205)

이 복잡한 세상에서 충분히 깊어진 이타심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소나무처럼 그 자리에 있어 주는 마음인지도 모릅니다.”(221)

다짐해봅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눈길이 향하는 순간 그 자리에 제가 있기를, 그럴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그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위선도 없는 이타심의 순간이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222)

이 글을 읽으며 이타심은 특별한 사람들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속 작은 실천으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있는 곳에서 소나무같은 사람으로 자리하고 싶습니다.

전영미 님

 

 

요즘은 이타주의라는 말이 왠지 낯설고, 심지어는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들 자기 일 챙기기도 벅찬 시대니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최태현의 이타주의자 선언을 읽고 나니, 이타주의가 꼭 자기희생이나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같은 말은 아니라는걸 새삼 느꼈다. 오히려 함께 잘 살기 위한 전략에 더 가깝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은 늘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늘 그렇게 이상적이지 못하다. 업무는 쌓이고, 감정은 쉽게 소모되고, 때로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하는 회의감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이타주의는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단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저자가 말한 이타주의는 남을 위해 나를 버리는게 아니라,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태도였다. 그 말이 정말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의 작은 행동이나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고, 동시에 그 과정 속에서 나도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 그게 바로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타주의는 거창한 선행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에서 시작된다는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시설에서의 하루하루가 그렇다. 이용자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읽어주는 일, 동료와의 협업 속에서 서로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일, 그런 작고 반복된 선택들이 결국 이타주의의 실천이라는 걸 느꼈다.

이타주의자 선언은 나에게 좋은 사회복지사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함께 변화하는 사람, 그게 진짜 이타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런 삶이야말로 나다운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 책을 덮고 나서 마음 속에 남는 건 단순했다.

이타주의는 남을 위한 길이자, 나를 지키는 길이다.’

그 문장을 떠올리며, 내일도 다시 현장에서 사람들고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손세익 님

청주에덴원 선생님들과

 

이 책은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평범한 책은 아닌 오히려 우리가 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늘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에 함께 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우리가 마주하는 그 복잡한 감정들,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까지도 달래주는 책 같았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깊이 공감했던 메시지는 바로 타인의 고통 앞에서 오롯이 위로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왜 이 구절이 와닿았냐면 우리는 사회복지사로서 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데 때로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아픔을 우리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함께 슬퍼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타심이 단순히 돕는 행위를 넘어,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생각을 해 보았을 때도 문제 해결과 결과와 성과만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전문가로서 타인의 삶에 진정으로 스며들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서예슬 님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알아채고 신경 쓰는 마음이다.” 이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에덴원에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이용인을 위해 저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나의 행복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돌보는 것이 곧 이용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관점은 번아웃 예방과 전문저거 경계 설정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타주의는 누군가에게 무조건 베푸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이 이어지는 지점을 세심하게 발견하고 보살피는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관점을 실천 현장에서 꾸준히 적용하고자 합니다.

김상희 님

 

 

이 책을 읽고 이타심에 대해 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나도 좋고, 다른 사람도 좋은 마음입니다.”

저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돕느라 제 감정이나 휴식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저도 행복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이용인을 무조건적으로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용인도 행복하고, 저도 행복한 함께 좋은 실천을 더 생각하며 일하고 싶습니다.

신영숙 님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여정에 있어서 타인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있어서 나의 대화방식이나 감정에 따라 상대방의 나에 대한 대화방식과 내용 그리고 감정도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 생활에 있어서도 이용인분들과 대화 및 지도과정에 있어서 이용인분들 개개인에 내재되어 있는 성향과 특성을 잘 파악하고 대화 및 지도과정에 있어서 나의 감정을 잘 조절하여 이용인분 개개인에게 맞춤형 대화 및 지도과정이 필요함과 함께 나의 감정을 잘 억제하는 것이 이용인분들의 감정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행동으로 실천함이 미약하나마 타인을 향한 이타주의를 실현시키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홍기 님

 

 

 최태현의 『이타주의자 선언』은 이타심과 이기심의 경계를 탐구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이타주의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경계. 저자는 이타심이 단순히 ‘타인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겹치는 지점을 발견하는 태도라고 정의한다.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개인적 감정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타인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관계 지향적 태도 이타주의는 고립된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타인과 맺는 관계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타심의 모호함, 흔히 이타주의는 ‘좋은 것’으로만 여겨지지만, 저자는 그것이 때로는 이기적 동기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칭찬받기 위한 행위는 겉으로는 이타적이지만 본질은 이기적일 수 있다. 균형의 중요성 저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소모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행복과 겹치는 완충지대를 찾는 것이 진정한 이타주의라는 점이 인상 깊다. 
최태현 작가는 완충지대를 갯벌에 비유하고 있다. 두 개념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지 않고 밀물과 썰물처럼 서로 스며들고 겹치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이타적 행위 속에도 이기적 동기가 깔려 있을 수 있고, 이기적 선택이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이로운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타주의자 선언』은 이타심을 단순히 도덕적 미덕으로 찬양하지 않고, 이타와 이기의 경계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묻는 성찰의 책이다. 읽고 나면 “나는 진정으로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 동기를 포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작가가 정의하는 이타주의적 삶이란 무엇인가?
희생이 아닌 확장 이타심은 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나를 확장하는 것이다. 공적 슬픔의 수용 세월호,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비극을 단순히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타주의적 삶의 핵심이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자아 이타주의는 고립된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자기 이해와 성장의 과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이타주의적인가?
일상 속 작은 배려다. 가족, 친구, 동료와의 관계에서 작은 공감과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다. 예를들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거나, 작은 도움을 주는 행동.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기, 사회적 사건이나 타인의 불행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함께 애도하고 기억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나와 타인의 균형 찾기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겹치는 지점을 찾아 선택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감을 갖는 것이다. 기부, 봉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 내기 등 개인의 선행을 넘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이타주의적 삶은 “타인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이타주의는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존재 방식이며, 나와 타인의 경계가 만나는 갯벌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존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김명철 님

 

 

* ‘이타주의자 선언 4회차에 걸쳐 읽고 토론하고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함께 진행한 에덴원 사회복지사, 종사자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직책은 생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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