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죠? 저는 베트남에서 한 달을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베트남 북부 고산지대 사파에서 첫 편지를 보냈던 것 같은데 그길로 중부에서 남부까지 쭉 내려와 어느덧 한국이네요. 사파이후 다시 하노이로 들어가 주말 한적한 도시를 즐기고 중부 다낭을 거쳐 중남부 호이안, 나트랑으로 남부 달랏과 호치민으로 여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긴장이 제법 풀린 상태에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고 질문하는 시간들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여행을 통해 그동안 무뎌졌던 내 자신의 감각을 하나씩 깨워내고 주변을 관찰할 수 있던 시간은 숨 가쁘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사파만큼이나 제 발목을 붙잡았던 지역은 베트남 남부의 달랏이었는데요, 역시 고산지대 입니다. 해발1500m의 이 도시는 프랑스 지배 당시 휴양지로 사용되던 지역으로 지금도 베트남국민들 사이에서 신혼여행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누구와도 가까워 본 적 없는 하늘의 일과는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이별의 색은 파랑, 더 멀어질수록 진해지는 파랑이었다. 더 진해질수록 멀어지는 색’ 이라는 시를 마음에 담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짙고 파란하늘이 좋고 어쩌면 하늘과 내가 가까울 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 때문에 여행지 중 고산지대에 오래 머물곤 하나 봅니다.
달랏은 lat이라 불리던 고산족이 사는 큰 강(Da) 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몇 백년 전까지 이곳은 베트남과는 분리되어 있는 독립된 고산지역으로 다양한 소수 민족들의 전통, 문화가 이어져오던 곳이라고 합니다. 유독 주민들의 미소와 환대가 인상적이었던 이곳은 번잡한 타운에서 벗어나면 큰 기운을 주는 산맥. 구름. 하늘이 다시 타운으로 돌아오면 주민들로 빽빽한 야시장과 고산지대 농작물. 먹거리들이 있습니다. 밤이 드리우면 온 천지가 빛이 들어오는 비닐하우스로 달랏을 가득 채웁니다.
아픈 적 없어 보이는 이 풍요로운 도시 분위기의 비결은 프랑스의 흔적이 아니라 그 긴 시간 이곳에 거주하며 이곳을 일구고 지켜내고 살아낸 주민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선선하고 한적한 달랏에 제법 오래 머물게 되었습니다. 안타던 오토바이로 곳곳을 누비면서요.
여행을 하면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여자애가 겁도 없다. 용기가 많은 사람이구나. 부럽다'등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어쩌면 혼자 여행하는 젊은 여성에게 당연하고 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그 말들이 소화되지 않은 채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혼자만의 시간에 문득 다른 언어로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렇게 겁 없이 헤쳐 나가는 나인데 지난 나의 일상에서.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일상에서는 왜 이렇게 겁을 먹고 있을까. 별거 아닌데...' 자책하진 않습니다. 조바심나지 않으니 그저 발견하고 받아드립니다. 다만 돌아가면 일상에서 여행을 해보리라 다짐합니다.
배낭여행에서 내 자신을 믿는 행위는 환전한 돈의 양, 안락한 숙소만큼 중요한 자원이 되어줍니다. 내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믿을수록 제법 안전하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누군가 요구하는 과업들을 해내는 일. 억울한 일들을 버티는 일도 거뜬하게 해내는 우리들은 얼마나 내 자신을 믿는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을까요.
베트남 여행에서 사람들을 꼼꼼히 바라보고 마치 아는 사이처럼 웃고 반가워하는 저의 눈빛과 마음을 아주 귀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이와 동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타인을 통해 내가 퍽 괜찮은 사람임을 느끼며 쑥스러워 집니다. 달랏에서는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많이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 기운을 잘 담아 누군가를 또 사랑하고 발견하는데 사용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렇게 베트남에서 가득 느낀 기운을 편지에 담아 여러분께 보냅니다. 부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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