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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76호> 베트남에서 보내는 편지_정미진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5.

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베트남에서 숨 소식지를 사랑하는 분들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혼자 배낭 메고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배낭을 둘러맸던 2년 전은 용기 내어 도망친 것이었고 두 번째 배낭을 둘러맨 지금은 용기 내어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쪽이든 저에겐 절실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첫 배낭여행 때 한 숙소에서 배운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는데 여행 내내 동행하는 짐덩이 배낭은 너무 무거울 땐 나아가지 못하고 너무 가벼울 땐 또 여행을 버티기 어려워 배낭의 주인은 끊임없이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가볍게 할지 선택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삶과 닮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유독 배낭을 여러 번 다시 정리하는 이번여행에 생각나는 이야기네요. 이번 배낭에는 누구에게 쉽게 말하지 못할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기대가 한가득 차 있어 그런 가 봅니다.

 

! 왜 베트남인지 이야기 하자면 몇 개월전 활동가연수로 5일정도 방문했던 하노이 여행이 너무 아쉬워서 입니다. 길다란 베트남 지도를 바라보며 저 곳곳은 얼마나 다양한 모습들이 있을까 상상했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커피가 여행내내 함께하기 좋은 최적의 조건도 한 몫 했습니다.

여행의 시작은 하노이였는데 여전히 시끄럽고 편안한 그곳은 여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피곤할 때면 상상을 초월하는 교통규범과 크락션 소리에 짜증이 나지만 잘 관찰해보면 그 규칙이 불편한 행인들은 대부분 여행객들입니다. 그들의 방식에 익숙치 않고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지난 하노이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작은 목욕탕의자에 앉아 호박씨를 몇 백 개는 까먹은 젊은 남녀들이었습니다. 정신없는 하노이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한적함과 여유로움, 거리 곳곳에 우거진 나무들은 너무 매력적입니다. 하노이에 머문 4일은 휴가를 낸 고등학교 친구 둘과 함께 했는데 한 번도 멀게 느껴본 적 없던 친구들임에도 부쩍 멀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멀어져도 여전히 보고 싶은 친구들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마음 한 켠이 외롭기도 하고 어찌하는 게 좋은지 고민도 됩니다. 그저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벼르던 사파 행 버스를 탔습니다. 구름과 가까운 베트남 북부의 절경이 펼쳐지는 그곳은 다양한 산악부족들의 도시로 12개 정도의 부족들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밤새 슬리핑버스에서 뒤척이다 새벽에 내린 사파에서 마주한 호수, 구름, 산들은 피곤을 싹 달아나게 해줍니다. 5일 만에 부러터진 입술정도는 금방 잊혀지는 에너지입니다.

 

다양한 전통의상과 악기, 사파의 계단식 논과 우거진 산들을 둘러보는 방법은 현지 소수민족들과 함께하는 트레킹인데요, 오늘 하루는 이 구름과 산들을 더 눈에 마음에 담고 트레킹은 내일을 기약해야겠습니다. 갈 곳이 많은데 사파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소식을 두 번째 편지에 담아야겠습니다. 혼자의 시간이 찾아오니 이번 여행을 응원하고 평안을 기원해준 많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고마운 마음을 배낭에 잘 담아서 제가 발 디디는 곳곳에 심어놓고 싹트게 하고픈 마음입니다.

 

이제 차근히 지난시간을 돌아보고 즐겁게 경계를 하나씩 넘는 여행을 즐겨야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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