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나는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었다. <미투운동, 우리 들여다보기> 토론회를 준비한 우리는 지역 운동사회 속 피해자로, 대리인으로, 조력자로, 해당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했던 여성들이다.
15분의 토론문을 작성하는데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뒤죽박죽한 생각은 종이위에 잘 올라가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들이대는 수많은 잣대들은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미숙한 잣대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시민사회 내부의 반성폭력, 성평등을 주제로 토론자리에 자진한 나는 어떻게든 글을 써내야 했다.
나의 첫 번째 고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문제의식을 여러 사람들 앞에 내놓아야 하는 압박감 뒤에 이것은 나의 문제이며 앞으로 내가 함께해야 할 동료들의 문제임이 나에게 당위성을 주었다. 공동체 일원의 성폭력사건을 침묵으로 대응하는 공동체의 내부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모순점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내 문제의식의 주제를 짧게 정리해본다면 ‘침묵에 대하여’ 일 것이다”
그렇게 발표가 시작되었다. 문제의식의 시작은 여성, 위계적으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잠재적인 폭력에 대해 내가 속한 시민사회단체는 어떠한 안전망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그 필요성조차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 원인에 대한 관심으로 몇몇의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사건의 경중을 떠나 어떠한 대응과정도 경험하지 못했던 공동체에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정리되어진 쟁점은 4가지 정도였다. 첫째 소규모의 실무자로 운영되는 시민사회단체 환경의 한계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책임의 주체가 개인일 확률이 높고, 함께 해결해 나갈 이들보다 공론화로 인해 개인이 경험하게 될 혼란스러움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 둘째는 조직에 대한 관점의 변화이다. ‘조직보위’가 조직존재의 목적이었던 과거의 운영방식에서 이어져온 관습은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가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는 상황을 조성한다. 그렇게 조직으로부터 소외되는 피해자는 ‘침묵’ 혹은 ‘그만두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셋째 남성중심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음과 그럼 여성이면 되는가? 에 대한 물음이다. 1~20년전에 비해 각 단체는 여성실무자, 여성회원이 늘어나고 있으며 조직의 대표가 여성이 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역할보다 ‘책임자’로서 존재함을 호소한다. 여전히 8,90년대 초반 남성활동가 중심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으로 권력이동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성평등 문화에 대한 책임이 성별관계 없이 공동체, 조직에게 요구되지 않고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지점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성평등 내규와 무수한 교육은 우리의 일상으로 녹여나고 있는가? 이다. 성평등은 문제의식, 문제제기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지속적으로 일상에 침투해야한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한 시선으로 시민사회를 뒤돌아보았을 대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는지 냉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대상은 조직 내 의사결정권을 가진 실무자, 대표자들이 되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이야기 했다.
이렇게 나열된 쟁점들은 우리는 왜 ‘말하지’못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경험한 피해자의 침묵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성장시키곤 했다. 가장 마음이 아프고 두려울 때 이다. 공동체는 ‘피해자의 용기’를 요구하기 전에 남성중심의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성찰과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해야한다. 까지... 나와, 나를 매개로한 다양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앞자리에서 나를 유심히 보시던 중년의 여성분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본인이라면 말할 수 있겠어요? 그 질문을 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활동가가 되기 전 청소년, 대학생 시절 경험했던 꽤 심각했던 성희롱, 성폭력사건에는 오히려 소극적이나마 대응해왔어요. 오히려 활동가가 된 이후 사소한 성희롱에도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했죠. 돌아보니 차이는 하나였어요. 내 손을 잡고 함께 나서줄 사람이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 공동체에서 내 용기는 보호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죠.
이어지는 참여자들의 진심어린 질의응답은 마치 내가 언제 고민했었냐는 듯, 나를 그들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상처 입었던 많은 이들이 처음, 그 자리에서 누군가 내민 손으로 말할 수 있었다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주체로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는 과거 여러 사건의 당사자이자 분노하는 개인에서 ‘다른 이들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경계를 뛰어넘는‘사람’, 조력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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