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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71호> 살며 사랑하며_정미진(청주KYC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한 드라마에 푹 빠져 설레기까지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젊은이들의 푸릇한 연애를 부러워하면주책없다표현하던데 50대가 코앞인 남자주인공, 감우성의 눈빛에 설레여 1주일을 기다린다면 나도 주책없는 걸까?

어제 이 드라마의 엔딩은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로 끝이 났다.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한시절의 미완성이 나를 완성시킨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중년의 삶을 맞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직 두 남녀주인공의 젊은 시절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둘은 각자 과거 어느 시간에 갇혀 10년이란 시간을 지나보낸 사람들이다. 주변인들에게 그들은 너무나 미련하고 이해되지 않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모른 척 할 수 없고 그럼에도 함께하고 싶은 존재로 그려진다.

<키스먼저 할까요?>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답게 중년의 연애는 무언가 현실적이고 빠르게 진행된다. 빠른 전개와 대비적으로 너무나 조심스러운 남자주인공의 눈빛, 스스로 예상치 못한 감정변화를 경험하는 여자주인공의 독백 속에는 관계의 무거움이 가득히 묻어난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지도 못할 20대의 나는 그 무거움과 조심스러움이 이상하게 멋있고, 설레고, 사람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중년의 삶을 준비하거나, 맞이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리얼 어른멜로라는 수식어를 전면에 붙여 능숙하고 현실적인 등장인물의 삶을 그려나가지만 그와 대비적으로 관계에 어려워하고 감정에 당황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극적인 드라마는 갈등과 오해를 의도적으로 그려 넣어 보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던데 이 중년의 주인공들 이야기는 극적인 상황보다 조심스럽고 주저하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 고스란히 들어나는 서툰 감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애절하게 하는 것 같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미성숙한 이들의 멜로는 20대의 나로서 신기하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중년을 맞이한 꽤 성공한 삶을 산 저 주인공들도 사랑이, 관계가 어려운걸까? 그런데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얼마나 고민하며 살아갈까.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은 여느 드라마와 비슷한 고리타분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남자주인공은 암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여자는 과거의 일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 생존형 인물로 변해있다.

 

두 인물 모두 찬란한 젊은 시절과 후회되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큰 잘못된 선택과 상처는 이미 10년이 지나 너무나 늦어버린 일이 되었지만 주인공은 성장하지 못한 자신들의 마음을 인정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전 아내에게 사과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남자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훌훌 살아, 나 너 원망 안 해. 뒤늦게 알았어. 살아보니 산다는 건 옳고 그름에 문제가 아니란 걸, 좀 더 행복하거나 좀 덜 불행한 쪽으로 선택하는 게 당연한 건데 옹졸했다 내가.’ 라고.

 

우리는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잘못된 선택, 성숙하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될까. 그리고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고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될 것이다. 그 과정 속에 미성숙한 자신을 받아드리고 자신을 혐오하지 않게 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사람간의 관계, 사랑 때문일 수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다시 그 사랑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고민하는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에 빠져 어린아이 같은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인간으로서 자신의 민낯이 드러나고 미성숙한 자신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나면 한발 짝 더 성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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