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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72호> 제주 북촌, 유채꽃, 오름_정미진 (청주KYC 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제주의 북촌, 바다 빛이 너무 순수해보여 마음이 설레인다.

북촌에 위치한 너븐숭이 기념관은 현기영작가의 <순이삼촌>의 배경이 된 곳이다. 얼마 전 현기영 작가가 TV프로에서 제주 4.3의 기억을 알려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답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순수문학을 배우고 글을 쓰려니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서는 내 글이 써지지를 않더라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 기억이 난다. 북촌 4.3 기념관 뒤쪽으로 둘러싸인 바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한 글귀 앞에 발걸음이 멈춘다.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무너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재산이 약탈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친구가 고문당하고 씨멸족 당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게 인간이란 거지

 

4월의 제주는 샛노란 유채꽃이 검은빛의 돌과 함께 동화 속 세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평화롭고 로맨틱한 제주도에서 나는 계속 저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는 인간일까? 계속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뻐근해서 특별하게 다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열정적인 해설을 해주시던 어르신은 우리와 함께 방문한 초등학교 두 아이들을 연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곤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해,, 잘 배우고 돌아가서 잘들 기억하고 살아요라고 웃으며 말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방문한다. 제주의 바다와, 제주의 자연이 사람들을 숨쉬게 해주기 때문일까? 이번에 내가 일주일을 묶었던 장소는 세화리 밭 한가운에 덩그러니 있는 숙소였다.

황금 같은 일주일을 그 곳에서 내내 머무를 계획은 아니었는데 새벽마다 오르던 오름 때문에 돌아가는 날 까지 결국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새벽5시가 되면 촌장님이 숙소를 방문한 손님 중에 일어난 이들을 트럭에 태워 오름에 데려다 주셨다. 그렇게 오르다 멈추다 오르다 보면 해가 뜨곤 했다. 제주에서 매일 새벽 오르던 오름은 매일 그 얼굴이 달랐다. 어느 날은 구름 낀 하늘에 간신히 해가 뜨는가 하면, 어느 날은 맑게 올라온 해가 정말 먼 곳까지 섬 밖의 먼 곳 까지 들여다보게 했다. 어느 날은 기다란 구름에 둘러싸여 고요하고 황홀한 모습이었고, 어느 날은 비바람이 불어 귓속이 먹먹하고 바람의 힘 때문에 몸도 가누지 못하게 했다.

 

오름을 오르면서 느껴지는 기운은 내 자신이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가지던 고민들보다 내 자신이 보이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하면 될까. 그 기분이 너무 낯설고 좋아서 게으른 나는 매일 새벽 바락바락 일어나 촌장님의 트럭에 올라타곤 했다. 일상에서 느껴지던 아침과는 달랐다. 너무 좋았다. 그 기분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 매일 새벽 오름을 올랐다.

북촌의 푸른바다 앞에서,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 사이에서 매일 아침 새벽 오름에서 생각하곤 했다. 정답을 찾아 헤매던 조급한 마음을 조금 내려놔야지. 그냥 살아봐야지. 마음이 가는대로, 주변사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살다보면 일상에서도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눈물 흘리며 그럼 나는 인간일까?’ 라는 질문을 가지던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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