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숨을 만난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의 지난 2년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과 불안감에 매일 고민하고 아등바등 싸우며 보냈는데, 그 2년 숨에서의 시간은 불편함 없이 불안함 없이 그렇게 지나갔다. 돌아봤을 때 인상 깊었던 기억은 내 속마음에 함께 끄덕이며 맞장구치는 이은규 일꾼님과 목요강독회의 얼굴들 정도이다. 그것을 제외하면 정신없는 요즘 세상에 신기할 만큼 무던하게 시간이 지나갔다. 나에게 이 사실은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다.
나는 한국의 20대 이다. 단 몇 개월, 1년의 시간도 맘 편히 보내면 안되는 줄 알았다. 면접장에서 졸업 후 몇 개월, 1년의 자기시간을 취조 받는 현상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친구들처럼. 그래서 나에게는 불편함, 불안함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목요강독회의 새로운 손님은 혐오의 표현을 주제로 한 홍성수작가의 ‘말이 칼이될 때’다. 저번 주 강독회에서 나눈 대화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소수자, 약자가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내면서 인권이란 것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곱씹어 보니 나와 내 또래들이 계속 떠올랐다.
나와 내 친구들의 인생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생존의 위협을 경험할 만큼 가난하지도, 교육의 터울 안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안전히 졸업하고 심지어 대학교도 졸업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던 인터넷 세대이다. 내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언제나 우리자신보다 부모세대가 더욱 심각하게 하니 내 걱정은 상대적으로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헌신’, ‘부모’란 이름하에 부모의 돈을 참 쉽게도 사용했으며 그 돈을 벌기 위해 내 부모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를 나눈 기억보단 그 돈을 쓰는 나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더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1순위 말 잘 듣기, 2순위 남보다 못나지 않기, 3순위 휴식에 대한 욕구 정도, 그리고 남은 시간 나의 적성, 직업에 대한 고민정도로 유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에게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존중받았을까?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은 분명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데, 내가 명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가끔 전화 오는 내 친구들이 ‘일하는 기계’가 된 것 같다는 고통과 너무 억울한 일이 많다고 호소한다. 원하는 일을 하는 내가 샘이 날만큼 부럽다고 한다. 나 참. 환장할 노릇이다. 장난 섞인 말로 그 호소는 나한테 말할게 하니라 노동조합에 말할 일이라 하니 그럼 언니가 와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달라 한다. 참으로 실없고 유쾌한 대화이다. 일은 절대 못 그만 두겠단다. 돈 없이 사는 건 죄인이나 다름없다고, 돈이라도 있어야 된다고 한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공감한다.
지역의 청년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요즘 제법 의미 있는 고민을 하곤 하는데 그 첫 번째 질문은 ‘청년문제’의 정의다. 남들이 말하는 것에 공감하는 것 말고, 정말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뭘까? 이다. 청년단체에서 일한다고 하면 모두 자신도 관심이 많다며 대화를 청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끝은 비슷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 때도 힘들었어’. ‘불만만 말하지 말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해결되는데?’ 라는 의미이다. 내가 그 답을 알면 대통령을 하지..라고 소심하게 생각하다가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워 진다.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청년답게 창의적이게, 신선하게 시도한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돈 가진 사람에게 맞추는 정도뿐 일까봐 마음이 무겁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실패할 일이라도 내 것을 하고 싶다.
너무나 복잡하고 변하기 어려워진 사회 속에서 20대로 경험하는 일상 속 불편함과 사색을 조금씩 풀어나가 보려 한다. 그렇게 하나 둘 글로 풀어가다 보면 우리 길을 찾는 힌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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