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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78호> 당신이 옳다_정미진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22.

얼마 전 출간소식을 접한 책 이름이다. <당신이 옳다> 국가폭력이나 사회적재난의 현장에서 활동하던 시간을 통해 삶의 궤도를 바꾸고, 개인의 심리적 폭력에 집중하며 그곳에서 삶을 시작한 정혜신이란 저자의 책이다. 몇 년 전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단체를 찾아보던 과정에 알게 된 정신과의사로 기억한다. 자신의 책을 설명하는 인터뷰내용이 인상적이다. ‘여름휴가를 가는데 대동여지도를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설명하며 그녀는 말한다. 계속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다 보면 너무 자주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에 자꾸 그만둬도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자주 그만둘 것 같죠? 사람은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니에요라고 응답한다.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지 모르지만 그녀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길 날을 기다린다.

 

아픔과 상처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모르긴 몰라도 고통과 상처를 인지함의 갈림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서 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면을 보고, 어떤 문을 통과하는지는 곧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 역사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공존했고, 나는 내 자신을 어떻게 존중하는지, 그리고 내 곁의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내는지 등. 그 모든 것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갈수록 내 앞에 다가오는 수많은 순간들을 마주하기 더욱 무거워지고 어려워진다.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나에게도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면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땅바닥이 아닌 가고자 하는 방향,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풍부하게 상상한다. 어느 날은 헬륨가스 풍선처럼, 어느 날은 구석구석 구체적으로. 그리고 여러 번 되뇌인다. 별거 아니라고, 쫄 거 없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렇게 살고자 하는 게 뭔 죄라고 쉽지가 않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나의 어떤 경험이 있길래 난 어떠한 환경 속에 있길래 이 별거 아닌 방식의 삶이 이리 어렵고 버거운 걸까. 그리고 곧 궁금해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그들은 힘들지 않을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까.

 

아직 읽지 않은 이 책에 미리보기를 좀 했다. ‘자격증이 무용지물인 트라우마 현장이라는 단원이다. 전쟁 같은 현장에서 이들이 숱하게 목격한 진실은 나가 떨어지는 전문가와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뛰어드는자원활동가그리고 자원활동가와 피해자가 이루어내는 슬픔과 무기력의 거대한 연대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현장이다. 그 반복을 목격하며 저자는 말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사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특별한 욕심도 아니라고, 그리고 이는 전쟁터 같은 재난현장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그렇게 말한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겠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 책 속 저자의 시선에 위대한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나는 오늘도 예상치 못했던 막다른 길목에 서 있었다. 방심했고 우울했다. 나는 내가 환자와 같은 존재이길 원하는 줄 알았는데 이 책에서 하는 말이 맞았다. 나는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서 있길 원했고, 그래서 발버둥쳤다. 나의 어설프고 창피하기까지 한 발버둥질을 스스로 바라보며 다짐한다. 창피해도 괜찮아. 내 자신을 사랑하는 일, 자기를 인정하고 존재하는 것들을 인정하는 일, 그로 인해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그렇게 속삭여본다.

그렇게 갈림길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나니 또 궁금해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길목에 서 있는지,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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