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최승호 전 mbc 사장이 영화 <암살자(들)>에 대해 페북에 남긴 글을 봤다. 최 전 사장은 다큐 PD로서 실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렇다치고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는 ‘박정희란 인물은 과도 많았지만 대한민국이 오늘의 경제적 도약을 이루게 한 거인이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그를 빼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썼다.
벅정희가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경우의 수는 상상하지 못했다. 과거에 ‘만약’을 전제할 수는 없지만 상상은 해볼 수 있다.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의 노골적인 부정선거에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94만6928표 차이로 떨어졌다.
박정희는 이듬해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 기틀을 다졌고 1973년 일본에서 김대중 제거를 시도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미수에 그친다. 최 전 사장은 1974년 중1이었다니 나보다 한살 많다. 같은 연배로 1970년대를 살았다.
내 기억에 1970년대는 시커먼 교복색과 같았다. 국민학교 때 수업을 중단하고 큰길가에 나가 뙤약볕 아래 한시간 이상 서있었다. 마침내 빠르게 달려가는 검은색 차량행렬에 태극기를 흔들었다. 박정희의 지방 순시였다.
보행자 전용 도로에서 잠깐 자전거를 탄 아이를 경찰이 불러세워 코피가 나도록 ‘싸대기‘를 때렸다. 출근길 무단횡단을 하거나 머리가 긴 어른들을 붙잡아 나일론줄을 쳐 만든 임시 울타리 안에 세워뒀다 한꺼번에 잡아갔다.
동네 이웃 아저씨가 술집에서 10월 유신 욕을 하다 잡혀가 소식이 없다고 어른들이 수근거렸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발목에 각반을 차고 총검술을 배웠다. 조회시간마다 교장 앞에서 오와열을 맞춰 사열, 분열을 했다.
극장에 가면 애국가가 나올 때 모두 기립해야 했다. 이후 대한뉴스를 보고나서 예고편이 나왔다. 매일 길을 가다 국기 게양시간, 하기시간 애국가가 나오면 차렷자세로 제자리에 서야 했다. 박정희 치세였다.
박정희가 10년 권좌에서 물러나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다면 경제발전이 불가능했을까? 당시 정부 선전대로 싸움만 하는 야당이 정권을 잡았으면 나라가 망했을까?
오히려 국민 자발성에 기초한, 더 역동적이고 탄탄한 국가로 도약했을 공산이 크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만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과가 있으나 공도 많다는 서사는 억지 꿰맞춤에 불과하다.
독일은 아우토반을 깔고 산업의 기초를 세운 히틀러의 공을 말하지 않는다. 최 전 사장은 육영수 죽었을 때 울고불고 했던 아주머니들 기억에 사로잡힌 듯 하다. 땡볕에 고도를 기다리 듯 대통령 행렬 기다리던 기억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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