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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94호> 올해에는... _이구원(다사리 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2. 26.

 

아직 새해 초이고 내가 쓰는 올해 첫 글이라 밝고 희망찬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훑어보다 김포에서 일가족이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1년 새 70여명 일가족 극단적 선택’... 구멍 못 메우는 복지망이라 적혀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18가구, 7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고에 의해 목숨을 버렸다고 한다. 우선 과연 이러한 빈곤이 만들어낸 희생을 극단적 선택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선택이라는 건 다른 길이 놓여 있을 때인데 과연 그분들에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있었을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소식을 담은 기사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빈곤에 희생되어진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로써 충분할까 하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대한민국 자체는 풍족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단 조건이 있을 뿐이다.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진 것이 있거나 아니면 내 자신의 가난을 스스로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만큼 가진 것이 없으면 된다. 또 그 빈곤을 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개인적 무능을 수시로 증명할 수 있으면 살아가는데 부족함은 있어도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 극단의 상황에 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매하게 가지고 있거나 무언가 할 수 있으면 위기의 상황에 몰렸을 때 문제가 된다. 기사에서도 나왔듯 200만원의 소득, 2000만원의 보증금과 중고트럭은 재산으로 보지만 가족이 져야 했던 1억이라는 빚의 무게는 보지 않는다. 혹은 생존을 위한 권리를 받고 있다 해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려 한다면 최소한의 안전망을 포기하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면 개인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각종 국제적 협약 및 종교의 경전 등에서 명시하고 있으며 이 땅의 헌법에도 선언하고 있듯 사람은 그 자체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말로써 존중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력이나 책임이 존재보다 앞설 수 없다. 더욱이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으며 그 부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들의 경우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묻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알 수 있다. 스물이 되어 누군가는 학자금대출 등의 빚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만 누군가는 학비 지원은 기본이고 수백만원이 넘는 용돈을 매달 부모로부터 받으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뉴스와 기사를 보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기 전부터 부모로부터 수십억의 자산과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명문대를 부모들이 교육에 투자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자도 있는 반면 기본적 교육 기회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이런 불평등의 사슬, 그 사슬 자체를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풍요 속 빈곤의 희생이 멈출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올 해에는 더 이상 가난으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없길 바래본다. 또 어느 정도 사회적 보장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 역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갖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나의 권리를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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