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에 한 사람이 탔다. 나와 옆에 활동지원사 선생님을 보더니 “쯧...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라는 말을 남겼다. 화가 나고 불쾌했지만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하다 엘리베이터를 내리고 나서야 “엄마 아니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인데”라는 소리를 읊조렸을 뿐이다. 그러나 그 뒤에도 그 말이 나의 마음에 머물렀으며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후회감이 쓰게 남았다.
난 날선 이야기와 비판을 잘 하곤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세상 자체를 좀 삐딱하게 보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친하거나 편한 사람들 혹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상황에 한정되어 있다. 나머지의 경우는 불편하거나 부당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눈을 감고 넘어가는 편이다. 스스로에 대한 변명은 이쯤 하기로 하겠다. 그 때 그 엘리베이터로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 말을 지금이라도 써 보고 싶다.
“엄마가 아니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이에요. 전 엄마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요. 엄마 역시 제가 태어나다 죽은 줄로 지금까지도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가난했던 아빠가 빌어먹을 이 나라에서 장애인을 키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해 엄마한테 제가 태어나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를 길바닥에 버리지는 않았더라고요. 그 이후 한 신부님이 입양원에 있던 저를 데려갔고 산골의 선교회에서 26년을 살다 4년 전에 제 삶을 살아보고자 나왔네요.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이 만약 제 엄마였다면 지금 당신이 한 그 말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셨을 거 같은데요. 어차피 저랑 관계없는 분인데 이런 무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사과하셨으면 좋겠고 앞으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더라도 두 번 다시 이 따위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남기는 이유는 내 자신에 대한 자책과 그 사람에 대한 원망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비장애인들은 나와 같은 장애인들을 보며 동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정작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애를 제거해 나가자고 하면 그 때는 장애인이 무엇을 하냐고 하거나 국가가 어디까지 해 줘야 하냐고 한다. 사실 내가 겪은 아픔은 나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동료 장애인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가족에게 버려지거나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시설과 같은데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아도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무기력하게 방구석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있다. 물론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이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의 과정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장애 유무를 떠나 모두의 삶은 다 다르며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공존한다. 동정은 장애를 불행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에 묶어 버리며 장애인을 그저 불행한 존재로 범주화해 버리고 만다. 유튜브 세바시 강연에서 장혜영님이 이야기했듯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솔직히 동정이라는 것 자체가 평등한 관계가 아닌 불평등한 관계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불평등에 공감하고 이 차별의 구조를 부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분노이다. 그 분노로 함께 싸워주신다면 감사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로 신경 쓰지 말고 각자 가야 할 길을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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