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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97호> 5.18 광주의 공동체에 대하여_이구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7. 28.

 

5.18 민주화항쟁일이 찾아왔다. 올해에는 박정희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던 516일에 인권연대 숨 회원들과 함께 광주를 다녀왔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5월에 광주를 찾아간 것은 올해로 세 번째이다. 사실 광주를 다녀오기 전까지 나에게 518일은 교과서적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악한 전두환과 그 무리들의 지시로 행해진 시민들에 대한 학살, 그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운동과 같은 개념들이 머릿속에 있었을 뿐이다. 광주를 방문한 후에야 그곳에서의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 훼손이라는 폭력의 본질, 남은 이들의 삶과 치유,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진실에 대한 내용들이 가깝게 와 닿게 된 것 같다.

 

특히 올해에는 광주를 방문하며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다시 생각해 보게 된 주제는 광주의 공동체이다.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개인적으로 공동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불과 4년 전까지도 선교 공동체에서 살아 왔던 내가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은 통제와 억압, 폭력적 배타성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에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솔직히 지금도 난 여전히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며 공동체는 일종의 필요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19805월의 광주 공동체는 이런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국가와 군의 만행에 저항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던 공동체는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가진 자에 대한 약탈이 없으면서 나눔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약자에 대한 폭력 없이 연대의 정신으로 뭉쳐진 공동체,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권력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도청 앞 광장에 모여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뜨겁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던 당시의 현장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물론 열흘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무기를 앞에 두고 투쟁과 수습파 사이의 치열한 갈등이 있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 상황을 수습하려 하거나 계엄군의 위협에 살아남고자 자리를 피했던 자들도 끝까지 남아 저항하려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떠나지 않았고 그들 중 일부는 국가 폭력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전에 알지 못했던 이상적 사회를 5월의 광주가 보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공동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나도 1980년 오월 광주의 공동체 앞에서는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슬프지만 아마 앞으로 이러한 공동체는 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약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주체로써 불의에 저항하며 연대했던 그 날의 정신만큼은 잊히지 않길,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정신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길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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