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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98호> 실패할 자유 혹은 그저 사람으로 살아갈 권리_이 구원(다사리 장애인자립지원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7. 28.

얼마 전 도라:욕망에 눈뜨다.”라는 영화를 충북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의 영화모임에서 봤다. 발달장애인의 성, 사랑, 욕망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존의 (특히 한국) 영화들과 달리 감동적이거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으며 물 없이 고구마를 먹은 거 같은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화 자체보다 이 영화가 남겨 주었던 고민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평소 고민해 왔던 주제들 중 떠올랐던 것은 바로 실패할 자유 혹은 그저 사람으로 살아갈 권리이다. 사실 실패할 수 있는 자유는 진보적 장애인운동에서 자립이념을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 특히 한국 사회에서 실패는 위험하고 피해야 할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 같다. 더욱이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많은 경우 이러한 실패에 대한 기회조차 용납되지 않았으며 사실 지금도 그러한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그저 나의 삶을 돌아봐도 알 수 있다.

 

항상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힘들거나 상처받을(실패할) 것을 날 대신해 걱정하곤 했었다. 예를 들면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홈스쿨로 공부했을 때 봉사로 나를 가르치러 오셨던 선생님과 수업을 하다 자연스럽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 보니 결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나보고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 물으셨다.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니 결혼은 하더라도 자녀는 혹시 (장애가 있을지) 모르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여전히 존재의 가능성도 모르는 내 가족의 삶까지 걱정해주셨다. 내가 살았던 수도 공동체 내에서는 성적 호감을 가진 만남이 일종의 범죄와 같이 여겨졌던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선생님의 걱정은 나름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신부님과 공동체에 대해 반항할 때 내가 제일 듣기 싫어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순수한 나를 선교회에 방문한 사회의 형들이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신앙적으로 실패하지 않고 바르게 사는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라고 요구받았다. 또 역설적이게도 20대 초중반까지 내 삶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만 힘들지 않은 것이었다. 내 친구들은 치열하게 자신의 진로와 삶에 대하여 고민하며 좌충우돌 살아가고 있는데 당시의 나에게는 그 과정과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건 그저 과거일 뿐이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지금 역시 그 성공의 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실패하거나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내 자신을 위축되게 하며 삶의 행복감을 확실히 줄어들도록 만드는 것 같다. 더욱이 이 틀을 상담과 같은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강요할 때가 종종 있다. 이 틀을 내 안에서 부수는 일은 살면서 풀어야 할 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사실 근본적으로 성공-실패라는 개념 자체가 이 사회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실패할 수 있는 자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저 사람으로 살아갈 권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실패의 기회를 차단하는 철장이 아니라 그 뒤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러한 버팀목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의 삶이 조금은 행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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