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숨’의 소식지에 저의 삶을 올리기 위해 잠시 묵상하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떠올린 것이 바로 깸과 희망에 대한 도전에 주저하지 않으며, 한계보다 가능을 논하자!입니다. 이것은 요즘 제가 메일을 보낼 때 아래쪽에 함께 나가는 서명의 내용입니다.
충북사회적경제센터란 법인에서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 그리고 로컬푸드 등 사회적경제를 위하여 제 몫을 해 보겠다고 일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게 되네요.
요즘 특히나 그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을 돌아볼 기회가 적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위 내용이 떠오른 듯합니다.
깸과 희망에 대한 도전에 주저하지 않으며, 한계보다 가능을 논하자!
이것이 주저 없는 도전이나 한계보다 가능을 논하는 것 이전에 인식되어야할 보다 중요한 내용이[깸]과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깸과 희망!
[깸]이란?
신영복 선생님께서 ‘꿈’에 대한 답변으로 하신 말씀이 [깸]입니다.
‘꿈은 꾸워오다에서 온 말이다. 꿈보다는 [깸]이 더 적절하다’란 말씀을 하셨지요.
저는 [깸]이 ‘깨닫다’와 ‘깨다’의 중의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무엇을 깨닫는가와 무엇을 깨는가가 중요하겠지요.
무엇을???
[희망]이란?
제 희망은 이웃을 이웃으로 여기는 지역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웃을 이웃으로 여긴다는 것은 ‘네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루가.12:30~31-’라는 예수님의 첫째계명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하느님? 이웃?
‘무엇을’은 ‘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을 그냥 두면 저절로 커가는 욕심과 매너리즘을 깨닫는 것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한 못 된 습성을 깨는 것
하느님? 이웃?
저에게 하느님은 ‘이웃’ 이길 소원합니다.
지금 만나고 함께하는 이들 중 가장 작거나 약한 이들, 가난하거나 소외된 이들이 이웃이길...
모자라고 부족한 저를
혼내주거나 이해해 주는 이, 꼬집어주거나 다듬어주는 이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밀어주거나 내민 제 어깨에 기대어 함께 부족함을 채워가는 이 이들이 이웃이길...
돌이켜 보면 정말
이웃들과의 소통과 관계 속에서 참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고,
저의 소원과 기도가 그 속에서 이루어졌고,
보다 소외되고 약한 이들과의 관계와 소통 속에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령이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깸’과 저의 희망인 ‘이웃’
저의 분주함이 그리고 주저없는 도전이 이 깸과 희망을 향한 것이길...
‘숨’과 같은 ‘쉼’이 그러한 깸과 희망에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은규형이 덧붙여 주시겠죠!!
이글을 적으며 숨과 같은 쉼을 누려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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