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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5호> 송광사 禪수련회 자원봉사 이야기 _ 유수남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9. 3.

 

 

자칭 공무활동가(남들은 공무원이라고 부른다)로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길고 긴 여름휴가를 보냈다. 칠월의 마지막 삼일은 가족여행을 갔었다. 팔월에는 10()부터 15(광복절)까지 56일 동안 혼자서 송광사에 머물렀다.

 

이십여년 전에 송광사 선수련회에 참가했었다. 당시, 선수련회 참가자들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시던 자원봉사자 분들의 겸손과 헌신에 감동을 받았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일주문을 나서면서 자원봉사자로 받은 은혜를 회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세월만 훌쩍 가버렸다. 자원봉사는 못 가고 수련회 도반들이 하는 가사불사에 작은 관심을 보테는 인연을 잠시 이어갔을 뿐이었다. 내가 불자는 아니지만 청정함을 추구하며 끝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 불국토를 이루시려는 스님들께, 서로 정성을 모아 가사를 지어드리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습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더 나이 먹기 전에 자원봉사를 가야겠다는 생각만큼이나, 오랜만에 송광사에 깃들어 몸과 마음을 쉬어야겠다는 욕심이 컷다고 할 수 있다.

 

송광사는 승보종찰이고 불일암이 있으며 조계산 호젓한 산길을 넘어 가면 선암사를 만나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주변 연계 관광상품이 없기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송광사 가는 길은 순천에서 61번의 정거장을 거쳐 송광사 마당에 닿는 111번 시내버스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송광사를 다녀오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섬김, 소식, 묵언, 기도에 정성을 기울여서, 몸과 마음의 무게를 줄이고 가벼운 걸음으로 상경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옛날엔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고 예수님께 울부짖을수록 한국교회의 모든 것이 싫어지고 공자님의 가르침과 군자의 길, 부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의 길에 매료되었다. 금강경 강독에 심취하여 속리산 먼 길을 지척인양 다니기도 하면서 이웃종교에 대한 열병을 앓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송광사를 다시 찾았다. 이제 끌림과 떨림은 줄었으나 숨이 편했다. 불경 속에서 송광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절집 풍경이 보였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고목만이 아니라 척주당(남자 영가가 절에 들기 전에 자신을 씻는 영가의 목욕탕)과 세월당(여자 영가가 절에 들기 전에 자신을 씻는 영가의 목욕탕)이 자세히 보이고 다람쥐도 보이고 들꽃도 보였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모든 것이 정겨웠으며, 모든 것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모든 것이 편했다. 송광사 뒤뜰의 달맞이꽃을 보아도,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에도, 관음전을 지나 부도탑에 오르는 포행 중에도 눈물이 흘렀다. 슬픔도 회한도 아닌데 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부처님의 도량에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송광사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흘렀다. 다음날도 그러하였다. 맑고 밝은 마음으로 평안한 하루를 보냈다.

 

주말이라 관광객이 몰려 왔다. 공양 준비를 거들고 설거지를 하면서 섬김의 자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림새는 자신이 불심 깊은 불자라는 것을 여러 가지 치장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속마음을 웅변하는 듯한 모습의 재가불자였다. 그는 이래도 되는 자격이 충분하다는 식으로 아무러치도 않게, 공양을 기다리는 대중의 줄을 자르고 점잖게 들어와 자신의 배식판에 음식을 담았다. 밥주걱으로 볼을 때려주고 싶었다. 겉으로는 이상이 없었으나 하루종일 몇 차례나 섬김의 자세에 금이 쩍~~가는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불일암에 올랐다. 법정 스님이 송광사에 계실 무렵에 늘 오가시던 오솔길은 무소유의 길로 이름 지어져 있었다. 나무토막에 투박한 연꽃 조각이 새겨져 있고 과 작은 화살표가 붓글씨로 새겨져 있던 불임암 가는 길의 표식이 번듯한(?) 안내 표지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속상했다. 그래도 하루를 소식과 묵언을 이어가며 열심히 공양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계곡 물가에 앉거나 백일홍 나무그늘 아래를 거닐며 기도를 드리고 늦은 밤까지 좌선을 하였다.

 

하루는 점심공양으로 올릴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하시는 스님들과 행자님들을 거들어 드렸다. 브로커리, 연근 등을 갈아서 넣고 반죽을 했는데 면발이 끝내 주게 맛있었다. 소스는 감자, 양파, 당근, 연근, 버섯 등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최고였다. 여기서 소식은 끝나고 말았다. 다음 날은 천자암을 향했다. 그런데 천자암으로 가는 산책로 중간에 길을 가로막고 있는 뱀을 만났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뱀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겁을 주는 소리도 냈다가, 찬송가나 찬불가를 듣고 자리를 비키라고 서너 곡을 불러주었으나 그 놈이 버티기에 이겨서 천자암으로 가던 발길은 돌리고 말았다. 여기서 묵언은 날아가 버렸다. 낡은 털신의 뒷축을 헝겊으로 기워서 신고 다니시는 스님의 뒷태에 합장을 올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카톡에 올리기도 했다. 좌선이 끝나면 계속 말을 걸어오고 취침시간에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코골이를 하는 어느 도반을 피해야 하는 번잡함도 있었으나 덕분에 기도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얻기도 했다.

 

어디서나 쉽게 일희일비하는 나는 역시 나였다. 다시한번 지금 여기 내가 문제일 뿐이였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특별한 시간을 갖고자 했으나 어디서나 마음이 문제이듯이 송광사에서도 끝없이 흔들리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편한 숨으로 정진을 계속할 것이다. 높은 처마 밑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평안한 풍경처럼, 이웃하는 모든 것들과 어우러져 좋은 소리 하나 아래로 아래로 내리는 아름다움을 과 함께 이루어 가고 싶다. 그것은 하느님의 변함없는 은총과 섭리 가운데, 부처님의 가피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숨으로 천국을 이루며 천국을 향해 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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