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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제101호> 결혼을 앞두고_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0. 9. 28.

 

나는 사람을 부른다/그러자 세계가 뒤돌아본다/그리고 내가 없어진다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첫 번째 연애시에 나오는 구절을 기억해냈다. 맞다. 단지 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를 불러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 일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나에게 범람해오는 것이었다. 연애는 넘치고, 덮치고, 파괴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말을 잃고 새로운 말을 주워섬겨야 했다.

상대는 온 몸의 체중을 실어 상대에게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슌타로의 시를 빌려 적자면 내가 그를 부르자 세계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부딪혔다.(나는 으스러졌다) 동시에 그는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자신의 욕구나 감정에 푹 빠진 채로 나에게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나에 관한 진실들을 좋아했다. 그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내가 세워둔 마음의 장벽을 더듬다가 풀어헤쳤다. 그의 사랑스러운 침입에 나의 많은 것들을 그에게 들켰다.

 

그의 태도는 자기애적인 사랑에 빠지기 일쑤였던 나에게, 내 감정과 생각과 이상으로 가득 차있던 나에게 타인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부순 만큼 내 속엔 타인을 위한 집이 지어졌다. 나만의 세상에 그는 튼튼한 다리로 성큼성큼 문을 뚫고 들어와 대자로 누워 나를 관찰했다. 웅숭깊은 천장과 내 생각이 잠겨있는 싱크대와 상상이 피어오르고 있는 나그참파 향, 그리고 그것이 놓인 목가구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부끄러운 나는 그에게 나의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다. 세계의 일부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랬던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우린 청첩장에 결혼한다는 말 말고 더 단단하게 연결 되겠습니다고 썼다.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아주 거대하고 오래된 세상에 진입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축하한다, 알려주어 고맙다, 왜 결혼하냐,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라 등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눈물을 지으며 감동을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처음 본 상대의 친척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맞이하셨고, 친가·외가 할머니들은 똑같이 내 손을 꼭 잡고 신기한 눈으로 나를 오래도록 쳐다보셨다. 우리가 더 단단하게 연결되는 일은 각자가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을 같이 확인하고 고마워하는 일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지난 여름 결혼 소식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단절되어 있던 인연들을 찾아 연락을 하고 있다. ‘열심히, 성실히 싸워서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야만에 대항하는 길은 서로 연대하고 공생하는 길일 터인데, 왜인지 나는 옛 인연들과는 멀어지려고 해왔던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옛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고 그보다 그들의 육성이 듣고 싶었다. 나의 뿌리와 같은 말투와 억양이 그리웠다. ‘갑자기 연락하면 당황해하지 않을까’, ‘다른 속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전화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눈물이 차올랐다. 전화해주어 고맙다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그 말들 앞에서 그간 사납게 굴었던 마음이 초라해졌다. 멀리서 찾아온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준 모든 이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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