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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살며 사랑하며

<105호> 2020 그리고 2021_이 구원(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1. 27.

 

2020년은 나에게 다양한 의미의 한 해였다. 물론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집어 삼킨 한 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던 지난 해였다. 20대에 머물 것만 같았던 나이가 30대의 경계를 완전히 넘었으며 정말 오랜 고민 끝에 기존에 소속되어 있던 단체와 활동들을 그만 두었다. 또 내가 줄곧 회피해 왔던 상처를 잠시나마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했었다. 2021년이라는 또 다른 새해의 시작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지난 시간 속 나와 나의 감정을 뒤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대해서 아직 상대적으로 젊기에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에는 애매한 느낌도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삼촌 혹은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이제 별로 이상하지 않다. 2000년대 초중반의 노래나 포켓몬 딱지/스티커, 싸이월드, CD 플레이어/MP3/비디오테이프 등의 추억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묘한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애기들을 보며 종종 삼촌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 나이 들어감을 조금은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이런 감정들이야 자연스럽고 딱히 나쁠 것은 없지만 쫒는 사람이 없음에도 시간에 쫒기는 듯한 느낌은 앞으로 내가 잘 다독이면서 가야 할 나의 과제이다.

 

지난 해 내가 내린 큰 결정은 1231일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활동을 그만 둔 것이다. 3년간의 활동을 해오며 사실 어느 정도 나의 활동들이 익숙해졌고 어쩌면 많은 일들이 주어질 수 있던 상황에서 멈춤을 선택했다. 물론 감사하게도 앞으로 할 새로운 활동들에 대한 제안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 이유는 분노불안이었다. 사실 활동 자체는 한계는 있어도 의미는 있었으며 동료들과의 관계 역시 좋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들과 그로 인해 동료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도 나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이런 현실들에 적응하고 타협하면서 안주해 버릴 것 같은 불안감 역시 강하게 들었다. 또 그 동안 종종 찾아왔지만 그 원인을 회피해 왔던 우울감과 무기력 역시 휴식과 방향의 전환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 중에서도 2020년의 가장 유의미했던 일은 내 상처를 잠시 들여다보며 처음으로 감정을 폭발시켜 본 일일 것이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내가 태어났을 때 날 버리고 어머니에게는 사산되었다고 속인 내 친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울분의 감정이 내 안에는 깔려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그 깊이에는 얼굴도 모르는 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해 왔으며 이 감정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있다. 그로 인한 우울감과 폭발할 것 같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자주 느꼈지만 이를 애써 감추며 살아왔다. 그러다 지난해의 동료상담 과정에서 마법과 같이 내 감정을 직면하며 펑펑 울음을 터뜨린 경험을 했다. 울어본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엄밀히는 동료상담에 함께 했던 동료)들 앞에서 통곡을 해 본 것은 10대 이후 처음이었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내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 삶의 중요한 단추 하나를 끼우기 시작한 것은 같다.

 

새로운 출발 앞의 문턱에서 보낼 것들은 보내고 앞으로 이어가야 할 미완의 것들은 보완해 나가는 의미 있으면서도 즐거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팬더믹이 하루 빨리 종식되어 모두가 각자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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