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지역에서 열린 시민강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국가를 ‘권리의 원천’이라고 답했다. 강좌에 참석한 분들께는 다소 뜬금없이 들린 모양이다. 국가가 억압과 폭력의 원천이었던 과거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어떤 국가인지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적용되는 ‘사회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국가이다. 여기서 사회권은 ‘약간의 경제적 복지의 보장으로부터 사회적 유산을 완전하게 공유하고 사회의 통념에 따라 문명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권리’를 말한다(T.H. Marshall, 1950).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사회권은 존재하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1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2항)고 규정하여 사회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 범위와 수준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시민은 다양한 급여와 서비스의 이용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이 일을 할 경우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에 대한 법적 권리는 동등하게 보장하도록 하고 있으나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동등하지 않다. 사회보장기본법에 의하면 사회적 기본권은 국민의 권리이기에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필자는 작년에 ‘청주시 이주 및 다문화가정 아동 지원방안 연구’를 수행하면서 국적의 보유 여부에 따라 생활의 양상이 너무나 크게 달라지는 것을 목도한 바 있다. 똑같은 고려인 출신 한부모가구 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정은 임대주택, 보육료 지원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리는데 비해 국적을 미취득한 가정은 거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월세도 보육료도 사비로 부담하고 있었고, 비자 갱신을 위해 모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 비용도 사비로 부담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로 고등학교 3학년생인 언니가 야자도 방과 후 학습도 못하고 나이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가 왜 국적을 신청하지 않는지가 궁금할 수도 있지만, 청주 시내에서 외곽으로 출퇴근하느라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고, 토요일도 일할 때가 적지 않아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힘이 부친다고 한다.
다행히 위 사례에서 동생을 돌보던 언니는 학교 선생님들의 깊은 배려와 관심의 덕분으로 원하던 대학의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지만, 좋은 선생님이라는 행운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적어도 이주민 아동에 대해서는 교육권을 넘어 사회권까지 완전하게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법·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중앙정부의 빈틈은 지방정부가, 지방정부의 빈틈은 지역사회가 메워나가야 할 것이다. 올해도 ‘청주시 외국인주민 지원방안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작년처럼 최대한 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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