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장애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권’부터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2001년 한 지체장애인이 지하철역 리프트에서 추락하여 숨진 오이도 사건을 기억한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장애인들과 뜻을 함께 하는 활동가들이 지하철 선로에 쇠사슬로 몸을 감고 뛰어들어 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2002년에 버스타기 운동도 진행되었다.
당시 장애인들의 요구는 모든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지하철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일정 비율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임산부,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까지 혜택을 보게 되었다. 생애 처음 목격한 ‘보편적 복지’의 승리였다.
당시 필자는 가까운 선배 중 한 명이 뇌병변 장애 당사자로 장애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였기 때문에 처음으로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옥란 열사도 알게 되었고, 자원봉사 수업에서 장애인 야학에서 몇 달 동안 봉사활동을 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는 장면은 그 선배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장애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던 광경, 그리고 장애인 야학 강의실에서 당사자들과 맥주 한잔 함께 하던 광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장애인이 극히 드문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재작년에 ‘청주시 장애인 콜택시(해피콜)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를 하면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장애인 콜택시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 전화 연결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연결이 되어도 예약을 할 수 없는 사례도 많았다.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해피콜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정책방안들을 제안했다. 다행히 즉시콜 도입과 특장차 증차 등 일부 정책은 반영이 되었고, 올해에는 비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바우처 택시도 도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상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정해진 시간 동안 구간을 돌아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의 탑승을 기피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보행로를 보더라도 너무 좁거나 울퉁불퉁하거나 경사진 곳이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도로로 다니는 위험한 상황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여전히 너무 적어 마음 편히 외출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에서 ‘배리어 프리’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장애인의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전체 장애인의 약 절반은 65세 이상 고령자이다.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십수 년 전 서울에서 경험한 것처럼, 그리고 2년 전 연구에서 한 장애인 당사자가 말한 것처럼, ‘배리어 프리’가 잘 되어 있으면, 장애인만 편해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 교통약자가 될 우리 모두가 편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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