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기를] 친구가 내민 청첩장에 쓰여 있던 말장난 같은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변화’는 무엇이고 ‘변함’은 또 무언가. 둘은 같은 의미가 아닌가? 아리송했지만 그 뜻이 ‘둘의 상황과 외형에 변화는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변치말자’ 쯤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언어유희 속에 이렇게 큰 뜻을 담아냈다니…. 기특한 마음에 어떻게 이런 문구를 생각했느냐고 친구에게 물으니, 청첩장 기본 템플릿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체 모를 배신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2년 전에 받은 청첩장 문구가 새삼 자꾸 떠오르는 까닭은 내가 변함과 변치 않음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며칠 전 한 야인을 만나러 고요한 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아버지뻘 되는 야인은 백발이 무색하게도 ‘빨리 80살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이를 먹으며 변할까봐 두렵다는 뜻이었다.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도 없이 변해버린 동료의 이야기를 하던 중, 그는 부정적인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쳤다. 순식간에 늙어버리면 지금의 생각과 인식을 그대로 지닌 채 나이들 수 있으니, 차라리 스스로 명을 재촉하고야 말겠다는 성인(聖人)의 신념(宸念) 같은 것이었다.
숨이 붙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변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외형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내면의 인식, 가치관, 욕구 등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게 다 변할 테다. 변하는 게 꼭 부정적이란 법도 없다. 변화와 변함, 변치 않음 전부 가치중립적인 언어로 결국 쓰는 이가 어떤 맥락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최근 내 일상에서는 서글프게도 부정적인 맥락에서 많이 사용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때는 꽤나 순수했던, 선하다고 믿었던, 동지였던 이가 인간성을 잃고 잔인하게 혹은 어리석게 변한 모습을 보일 때 나보다 선배 격의 사람들은 변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그 사람이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그렇게 변한거야?’, ‘왜 그렇게 변한 걸까?’ 같은 말을 하며 상념에 잠겼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모르는 거야.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겠지?’ 그럴 때마다 ‘에이 설마요’라고 답하고 싶었으나 나또한 심연에 가라앉고만 것이었다.
경계도 반성도 없이 살다보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 근교에 놀러갔다가 강물에 빠진 적이 있다. 물의 흐름대로 속절없이 떠내려가다가 강변에 가까워지니 물 쪽으로 우거진 갈대인지 억새인지 모를 것들이 손에 닿았다. 떠내려가지 않게 닿는 대로 풀들을 잡아 쥐어가며 버티다가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구조됐다. 그때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 떠내려가 익사했을 것이다. 세상살이도 그런 것 같다. 야만의 시대, 중력에 몸을 맡기고 경계와 반성 없이 살다보면 비인간성에 익사해 죽음과도 같은 상태가 되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푸라기라도 필사적으로 잡아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임을 알고 고통스럽더라도 타인의 비판과 지적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성찰하는 인간에게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중력에 이끌려 세포가 노화하고 육체가 힘을 잃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비판적 사고를 하는 힘도 잃어갈 이유는 없다. 성찰하는 힘을 잃고 자신이 무오류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부터 비인간성은 자란다. 자신이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자신이 구하는 것이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특히 나보다 약하고 덜 산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기득권의 위치에 서 있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음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한다.
벗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중 누군가 이상하게 변한다 싶으면 진실로 매운 회초리를 들자고. 우리가 남의 삶 자리를 뭉개어 똥 누는 자리를 넓히거나 아니면 초록을 마구 잘라 골프장같이 세련된 걸 짓자고 하거나 아니면 먹고살아야 하니까 옆 마을 사람들이 숨 막히고 아픈 것쯤은 살짝 눈 감자고 하거나 아니면 젊은 날 내 고생 값을 내놓으라고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의 멱살을 쥐어흔들거나 그럴 때 나에게 침을 캬악 퉤- 하고 뱉어주라고. 나를 포기하지 말고 우레 같은 소리로 꾸짖어달라고. 젊은 날 쌓아온 정으로 등짝이라도 철썩 때려 정신이 번쩍 들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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