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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107호> 어떤 위로_계희수(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3. 30.

 

얼마 전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고 직후 서 있기 힘든 허리통증을 시작으로,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목과 손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채로 꼼짝없이 2주를 병원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건 무진장 답답한 일이었다. 코로나19로 환자의 외출과 면회가 전면 금지되면서 가뜩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된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한층 더 고립됐다. 도시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하는 찰나의 시간을 1년 중 가장 좋아하는데, 올해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그림 보듯 눈으로 감상해야 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내려다보면서, 밖을 쏘다녀 본 적 없는 사람마냥 청승을 떨었더랬다.

 

병원 안 감염병 관리는 철저히 이루어졌다. 좁은 4인 병실에서 그마저도 커튼을 끝까지 친 채 서로 투명인간처럼 지냈다. 휴게실에서도 대화나 취식은 금지됐으며 다른 병동에는 출입이 불가했다. 병실 앞 짧은 복도를 맴도는 게 유일하게 허용된 활동이라면 활동이었다. 물리적 격리가 답답함의 전부는 아니었다. 목과 손목에 극심한 통증이 찾아오면서 잠을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치의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책 등 손에 들 수 있는 모든 걸 금하고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주문했다. 사회와 연결되는 매개체가 전부 무용지물이 됐으니 그야말로 도시 속 섬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주변인들은 2주 휴가 받았다고 생각하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에는 놓친 게 너무 많았다. 한껏 기대해온 일들이 입원 기간에 딱 몰려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날짜를 그렇게 잡으려 해도 쉽지 않았을 터다. 수개월 간 기대하며 준비한 대내외의 여러 일들이 거짓말처럼 완벽히 입원 기간과 겹치면서 모조리 물거품이 됐다. 그 와중에 가해 차량 보험회사는 선심 쓰듯 입원기간 동안 일하지 못한 일당을 보상해주겠다며 합의를 하자고 하니, 승질이 불쑥 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입원하지 않았다면 느낄 수 있었을 내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보상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더군다나 사고 난 지 3주가 넘은 지금도 뒷목과 손목이 시큰한데.

 

무기력감과 원통함이 마음속을 헤집을 때 새로 일하기로 한 단체의 대표님이 한 말을 떠올린다. 몇 년 동안 일에 빠져 쉼 없이 달려왔는데, 사고 안 났으면 계속 몸을 혹사하면서 일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다. 지난해 경실련에서 성폭력을 당한 동료 활동가들을 돕다가 그들과 함께 부당해고를 당했다. 지금은 관련자들을 고소해 로펌과 경찰서에 드나들고 있다. 스스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중압감을 덜어내려 노력했으나 육신이 느끼는 부담은 달랐을 것이다. 대표님은 긴장 상태로 일을 무리하게 하면 30대 후반부터 몸이 많이 망가졌을 거라며, 그러니 몸을 세심히 돌볼 수 있는 전화위복의 사고라 생각하자고 했다. 적절한 때 강제 휴식을 취하게 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지금은 이만한 사고라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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