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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68회> 그리고...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나의 옛 동료.

나의 길벗.

티나수녀님과 짧은 통화.

여진을 두려워하고 있으나

수녀원에는 화분 깨진 것 외에는

괜찮다 하신다.

지진이 난 그 밤.

수녀님들은 여진에 대한 준비로

수도복을 입고 주무실 참이었으나

수녀님은 가만히 조배하시다 든 생각.

지금까지도 그분 덕분에 살아왔으니,

오늘밤 돌아가도 아쉬움 없다 여기며

말끔히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히 주무셨다고, 그것도 푹~...

다음 날 일어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번의 여진이 더 있었다고.

당신은 참 무던하시다는 이야기를

덤으로 들으셨다고...

마음 한 구석에

공포와 두려움이 남아있으나,

여전히,

연로하신, 혹은 병든 수녀님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자고 하신다.

 

세 살 아기를 양육하는 친구가 말한다. 상황이, 사람이 힘들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생각의 쳇바퀴를 돌리다 감정의 항아리가 가득 차 버린 그때, 아이가 완충재처럼 생각된다고... 하여 나를 본다. 아이가 있어 큰 소리 내고 싶어도 아이가 들을까 무서워 참고, 감정이 차오르다가도 아이가 주는 돌발상황들로,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흩어진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가 어찌되었든, 그것이 서운함, 서러움, 아픔일지라도, 아이들은 늘, 혹은 자주 현재에 있으니 그와 함께 여기에 있어볼 수밖에...

 

아이와 함께 지게지고 불쏘시개 구하러 집 주변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길.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커다란 나무를 끌고 집에 내려갔다 두고 와서는 다가와 더 큰 거 있어? 묻고는, 제 키보다 큰 나무를 끙끙 끌고 내려가 아궁이 옆에 두고, 타이어그네 몇 번 타고는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내가 책임이나 의무로 하는 일들을 놀이처럼, 콧노래 부르며하고 싶다는 마음을 잃어버린 요즘,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 가기를 잊은 요즘. 아이를 보며, 다시 기운을 얻는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시간이 와도 나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표현하려 하거나

그저, 스쳐가기도 하겠지.

한 쪽 손가락을 다 잃은 형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웃음을 마주 할 것이고,

치과 앞에서 두려움에 목메이는 아이의

등을 토닥일 것이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 하루, 축복의 기운을 보내기도 하겠지.

한없이 다 내어줄 것처럼

상대에게 미소짓다가

어느 서운한 한 순간에는

그 서운함에 며칠을 침묵할지도 몰라.

침묵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연결, 따스한 무늬를 그리기를.

서럽거나

난처해 보이는 아이에게

좀 어려워? 라고 질문하듯

누구도 나를 규정짓지 않는 시간에,

아이가 내는 고른 숨소리조차 잊는,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에

내 존재의 본질에

노크하는 질문을 하며,

결국 살아가는 일은

내가 사랑으로 존재하고 있는 과정을,

가끔 기록하며,

기억하고 되뇌이며

질문하고 다시 걷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

삶으로 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이렇게 앉아있는 이오후에도

나무 사이로 보인 하늘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길상사에서부분- 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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