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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제70호> 선물...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

2월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유치원을 졸업하였다. 아침마다 모여서 재미있게 지내던 사랑하는 유치원을 막내가 떠나면서, 이제 그 작은 유치원은 마을에 아이가 없어서 잠시 휴원 상태를 맞이하는 허전함을 남겼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선배 언니들과 나누던 대화에, 우리가 한 명씩 더 낳아 작은 학교에 아이들이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하자는 약속을 한 후,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한 듯 막내가 뜻밖의 선물로 왔지만... 유치원 살리자고, 다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 아이는 자랐고, 부모의 손길보다는 형이나 누나 사이에서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일상을 보낸다. 우리의 마음은 좀 더 여유로워졌고, 자식농사에서 조금쯤은 자유로워져 스스로의 공부에 집중해도 좋을 시간을 맞았다. 허나, 막내가 초등학교 입학 예비소집을 다녀온 후, 내 마음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고 다른 세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마음 뭘까?...

 

, 2월 어느 날. 2년 동안 마음 나누던 선생님들과 눈물로 헤어졌다. 아이들과 닭장 짓다 모여 앉아 모닥불 피우고 소박하게 김치랑, 고추장 놓고 삼겹살 구워 먹고,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궁리하고,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기도, 자연에 고마워하기도 하는 과정을 준비하려 함께 고민하던, 아이들 마음속의 고민, 상처를 어찌 보듬을 수 있을까 마음모아 공부하던, 가까운 이웃처럼 서로 사랑하게 된 선생님들을 떠나보냈다. 여러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선생님도 행복감을 느꼈고, 그것을 선물로 안고 간다는, 헤어짐의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는 선생님의, 이별의 말을 들으며, 헤어졌다. 아이들의 마음에 꽃길을 함께 거닐고, 빨간 김장 함께 담그며 정 나누었던 기억이, 어느 날, 따스한 기억으로 떠올라, 힘든 삶을 걸어갈 때 힘이 되기를 바라는 정겨운 당부도, 내 마음에 남았다. 사람 사는 일이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은 애정을 낳고, 그애정은 다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정성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한 때... 팔 년 동안 학부모로 살며 선물 같은 두 해를 보낸 것에 감사하고, 다시 맞을 새 학기를, 입학날을 달력 보며, 몇 밤 남았나 헤아리는 막내처럼 기다린다. 다시 한 번, 마음 손 맞잡고 아름다운 발걸음 내딛기를 바라며...

교육정책이 경제 논리에 의하여, 작은 학교에서 사람사이에 이루어지는 작고 사소한 변화와 의미들을 져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섣달그믐날, 그해에 진 빚은 그해가 지나기 전에 갚는 것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그림책을, 아이들 잠자리에 누워 함께 읽으며, 내 빚을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내편 들어주던 친구의 단어들, 공부하며 읽은 책에서 몇 구절 들려주며, 내가 직면한 지루하게 반복되는 생각에 대해 새로운 빛을 비추어준 친구의 목소리, 그만 쓰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너를 위해 써라라고 말해주던 오라버니의 음성, 늦게 퇴근하여 돌아온 저녁, 식구들 먼저 식사하고 아직, 나를 위해 남겨둔 온기를 간직한 누룽지를 내미는 스무해 남짓 마음 나누어 온, 남편의 손길... 빚이라기보다 선물로 남은 그들의 흔적... 참 고맙다.

 

회사에서 일 년마다 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다, 개인 파일에서 5년 전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갑자기 만나, 읽었다. 이상하게도 보낸 메일함에도, 유에스비에도 저장되어 있지 않은 그 자소서가 거기에 있었다. 작성한 기억조차 나지 않는... 5년 전의 나는 나를 이렇게 표현하였구나, 읽는 내내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면서도 뿌듯한 느낌. 마지막에 서술되어 있는 나의 소박한 꿈, 치료실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성장, 배움을 하고 싶다는, 그리고 비폭력대화를 더 깊이 공부하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나를 성찰하는 혹은 나를 기록하는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그꿈. 그꿈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내가 대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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