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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16호> 선생님과 잔디_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1. 6.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에 들어선 지금, 돌아보니, 짧지 않았던 시간동안, 마치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나를 자주, 들여다 보아왔던 것 같은 그 누군가가 나를 보아주었다. 살면서 너무나 그립고, 또 그리웠던 시선으로 나를 보아주시면서.

4월 둘째 주까지도 우린,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셋째 주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 왔다. 상담자와 내담자, 치유자와 상처 가득한 자, 그리고 듣는 자와 말하는 자, 삶의 빛과 그림자를 해석해본 사람과 삶의 그림자 속에 서서 빛을 그리워하는 사람. 삶의 비밀을 이미 발견한 사람과 이제 발견하고 싶은 사람, 몸과 마음으로 안아주는 사람과 몸과 마음을 안기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미 사랑을 회복한 사람과 이제 사랑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하지만 그 상황과 자신을 좀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사람과 상황과 자신의 거리를 바라보기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으로.

 

선생님과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선생님이 나에게 건네주신 말씀은, 애 많이 쓰셨어요와 당신 잘못도 아닌데, 였다. 나의 지난 시간이 흘러오는 동안 수많은 경험의 시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상처를 알아내고, 그 상처로 인해 만들어진 나의 생각과 행동의 패턴과,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완벽해지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사랑받으려고,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을 누르고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나의 흐름을 함께 읽어주시고, 그것이 어떻게 다시, 그 상처로 나를 상채기 내었는지를 나 스스로 알 수 있도록 공감해주고, 그 공감을 통해 자책과 밖으로 향한 원망하기보다 안팎을 동시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속으로 쌓아왔던 분노, 속으로 흘렸던 눈물, 창피하고 싶지 않아 애썼던 웃음, 나에 대해 오해하고, 상처 주었던 나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나를, 따뜻한 수용의 경험이 적은 나를, 냉정하게 나를 대해 온 나를, 더 많이 애쓰고, 더 많이 애쓰라고 나를 공격했던 나를, 순도 100%의 공감과 위로로 감싸 안아주셨다. 고군분투하며 홀로, 혹은 친구들과 해왔던 공부들의 뿌리가 채워졌으며, 내 생각 속에서 각각 흩어져 있던 공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백 조각의 퍼즐이 이 조각에서 저 조각으로 맞추어지듯, 내 안에 들어와 있던 문장과 생각들이 연합되었다. 상처를 고백할 때 먹먹하여 아팠고, 상처를 해석하여 말할 때 눈물이 흘렀으나, 그만큼 가벼워졌고, 상처의 이유를 알게 될수록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사랑받으러 이곳에 왔고,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실수할 수 있고, 그 존재 자체로 존엄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긴장없이, 오골거림없이 고백하는 나로 회복되었다. 스스로에게 그동안 사느라고 애 많이 썼다고 깊게, 자주, 위로의 문장을 건넬 수 있다. 싱그럽고, 상쾌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마음으로 건너왔다. 고맙고, 감사하고, 또 고마운 그런 8개월을 보냈다. 그 기억과 공부로 내 나머지 인생을 어려움이 가면, 또 다른 어려움이 오는 이 인생을 살아볼 수도 있겠다 하는 용기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쌓은 공부, 라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 그 나뭇가지에 나뭇잎을 틔우고, 자라게 하는 마음이 준비되었다.

 

무릎 꿇고 앉아 질문에 대한 답을 해도, 답을 하지 않아도 듣기 불편한 말을 듣던 열아홉의 그 아이는, 말의 내용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듣기보다 왜 대답을 안하느냐는 질타가 차라리 더 편해서, 대답 안하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삶의 한 지점인 그때를 생각할 때,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담담하다. 아프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한밤에 느닷없이 호출되어 알코올 냄새 나는 상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가 원하는 대답이 무얼까를 연구하며, 애쓰던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의 상대와, 애쓰던 나 자신.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각자의 상처와 각자의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 어렴풋이. 난 아직, 사랑을 모르니까. 이제, 조금 알기 시작했으니까.

 

그가 알코올 기운에 싸여 같은 말을 몇 시간이고 되풀이하기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여덟 살 딸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매일 출퇴근하던, 오토바이에 짐을 가득 꾸려 가족의 물놀이를 위해, 몇 번이고 집과 물놀이하는 강을 왔다갔다 하던, 그 자신도 그 시절에 그 가정에 태어나 그렇게 자라 그럴 수밖에 없는 그였다는 것. 삶의 매순간 속에 그 자신도 나처럼 애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든든하고 따뜻한 뱃심으로 안다. 나도 그와 같은 시절에 태어나 그 상황을 살아야 했다면 그와 엄청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의 상황 속에서 자신 스스로를 피해자로 몰아갔던 나는, 이 피해자 모드로 반백 가까운 시간을 걸어왔다. 그래서 애를 써도, 써도, 무척 힘들었다. 허나, 지금 다른 어떤 이유보다, 존재론적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조금 떴다. 물론 나 자신과 타인에 공감하는 시선을 회복했다가도 다시, 피해자 모드로 돌아가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감으로 스스로를 혹은 상대를 할퀴기도 하지만, 행복과 웃음을 꿈꾸던 나는, 이제 여기서 웃는다. 걱정과 근심, 염려와 욕심, 상처와 후회의 비빔밥을 비벼 어쩔 수 없는 상처로 나의 아이들에게 주었던 상처에 대한 회복의 과정을 함께 하기도 하며, 아이의 활짝 웃음을 꿈꾸기도 하며... 웃음이 가득하여도, 슬픔이 가득하여도 그 자체를 함께 웃기도, 함께 울기도 하면서, 서로를 지키면서,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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