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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18호> 다시, 봄_잔디(允)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2. 28.

 

둘째 아이의 방. 그 방 왼쪽 귀퉁이에 놓여있는 연한 초록 책상. 그 책상 끝에 낮은 창. 그 창을 통해 바라보는 마을의 나란한 불빛들. 아주 가까운, 그리고 따뜻한. 무척 오랫동안 마주했던 풍경처럼 가깝다. 자전거를 타고 5분이면 닿는 작은 성당. 걸어서 5분이면 무언가 구입할 수 있는 작은 마트. 화요일마다 나오는 따뜻한 마을 두부와 콩나물. 출근하다 가끔 괜히 들르고 싶은 우리밀 빵가게 그리고, 그곳의 초콜릿 향이 진한 브라우니와 같이 마실 땐 돈 안받아 하며 손님 없이 한가할 때 커피를 함께 마시며, 나를 들어주는 모니카 언니. 아이들이 하교 후 어디 있나? 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돌봄 받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 이 소소한 풍경을 맞이한 지 이제 여섯 달. 저 건너편의 마을의 불빛이 낯설지 않아 다행이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나왔지만, 이제 막 마음의 친구가 된 나의 보선을 떠나온다는 생각에 울던 서러운 눈물은 지나가고, 삶에서 찾은 미세한 스스로의 변화를 전화 통화로 혹은 늦은 밤 카톡으로, 문자로, 아팠던 순간에 다가온 미세한 깨달음을 들뜬 마음으로 나누며 울컥 하여 같이 울기도 하고, 진정 스스로를 살아가는 우리를 축하하기도 하지만, 자주 밤마다 그저 지쳐 잠들고, 그냥 지나가는 것 같은 우리의 시간을 아쉬워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로가, 그냥 지나침이 서럽지 않고... 가볍게 다음을 기약한다. 꼭 소리 내어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조금씩 에게로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안다. 느낀다. 그토록 그리웠던, 눈물 흘리며 찾던 곳이 어디인지 지각한다. 인식한다. 자주 잊기도 하지만, 자주 기억해낸다. 야호~! 그래서, 또 조금은 자유롭다. 그에게 참, 고맙다. 스스로를 읽고, 또 읽어주어서. 그리고, 그 소중한 시선으로 나를 보아주어서.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그냥, 그저 존재해 주어서...

 

3주 후면, 큰아이를 2시간 30분쯤 떨어진 거리의 학교에서, 그토록 힘들어하던 생활관에서 데리고 온 시간에서 일 년쯤 흐른, 그 시기가 다가온다. 입춘도 지나고, 경칩도 지나 봄의 기운이 땅과 딱 달라붙은 낮은 풀의 속삭임으로 들려오던 그때. 아이를 이젠, 내 품으로 다시, 데리고 와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무척 초췌한 얼굴로 학교 상담실에 앉아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가던 그때. 아이를 데리러 갈 때보다, 집에 데려다 놓고, 바라보기가 더 두려웠던 그때가 나에게 다가온다. 티 내지 않으면서 아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애타게 바라던 그 마음. 그 두려움을 딛고 그 아이도, 나도 지금 여기에 있다. 눈 마주침도 멀리하던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주물러 주기도 하고, 마음을 몰라준다고 떼쓰기도 하면서...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일을, 그리고 그때부터 길고 긴, 지금까지를 우리가 겪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여전히 숲에서 살고 있을까? 그 일이 아니었어도 숲을 떠나 왔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말없음으로 견디어내라고 조용히 밀고 있었을까? 삶의, 마음의 저 건너편까지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때의 나. 그때의 오만을, 교만을, 오해를, 무지를, 곡해를, 상처를, 무작정 애씀을 살고 있었을까?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가 혹은 내 안의 내가 인식하지 못한 진실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무수한 순간에, 나에게 삶에의 진심과 진실을 안내하는 사건으로 이끌어 주었을텐데...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쳐온 많은 순간들을 후회하여도, 별수 없다.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간다하여도 이번에는 알 수 있을거야 하는 젠 체 하는 마음도 지금의 나에겐 없기에... ‘그날이후 내내 공부하면서 지내왔지만, 겉은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다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공부하였다고 해도 상대가 말하는 것을 온전히, 상대의 마음으로 이해하려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과거의 자동적인 비난 혹은 자기 수치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은 영점일초의 여유도 없이 급격히 진행되기에... 허나, 희망적인 것은 그렇게 빠르게 그 자리로 돌아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와 상대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커다란 말풍선에 담고, 조금의 거리를 두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며, 구경하는 듯 조금 떨어진 그 자리에 서서 나는 어떤 의미로 이 말을 내고 있고, 상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 말을 내고 있구나를 상상하며 대화하고 있구나, 상대의 저 표현을 나를 향한 비난이라고 내가, 해석하고 있구나 그러면, 나는 저 표현을 왜 내 비난이라고 해석하고 있을까, 만약 저 비난처럼 들리는 말을 내가 비난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다르게 해석한다면 대화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그리고, 내가 비난으로 받지 않고, 상대의 불편함이나 아쉬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유를 두고 바라본다면, 나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이러저러한 문장들이 엄청 애쓰지 않아도, 나의 생각 속에서 나 혼자 하는 탁구 게임처럼 생각들이 가볍게 왔다 갔다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코끼리 만지기 우화 속의 여러 사람이 다 나의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허나, 그걸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으이구, 쯧쯧쯧하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괴로웠어? 외로워? 애쓰느라 힘들지? 라고 내가 나에게, 그말을 건넨다. 물론 여전히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리둥절하며, 얼어붙기가 부지기수다. 허나, 이말을 해야 할까? 저 말을 해도 될까? 그 말은 이런 마음으로 한 걸까? 많은 생각들로 망설이다 그냥 소리없이 지나가기보다 책에서 수없이 읽었던, 상대를 듣고, 나를 말하는 체험을 체험한달까? 잠을 자고있는 한밤중에도, 뜨거웠다 다시 식고, 잠이 깨고, 다시 잠들었다가 다시 뜨거워져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사라지는 내 몸속의 알 수 없는 열기처럼 감정은 나에게 다가왔다 지나가고, 다시 다가왔다가는 어느새 지나가며, 나를 세차게 흔들겠지만, 나는 이제 그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를 본다’. 그 약간의 거리를 몸으로 배우고 있다. 이제야, 그리고,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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