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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17호> 질문_잔디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1. 26.

 

 

나는 늘 궁금했다. 슬픔 없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상처 없는 밝은 영혼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내가 가닿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나는 누구일까? 사람이 사람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 걸까? 나의 기나긴 슬픔은 어디에 도착하여, 어떻게 끝날 것인가? 그 끝이 있기나 한 걸까?... 한 생각은 다른 생각을 끌고 여기로 걸어 오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끌고 나를 저기로 데려갔으며, 그곳에서는 또 다른 생각이 달음박질 쳐서 급하게 이어져 결국에는 내가 더 노력해야하고, 그래서 완벽한 어떤 것을 계획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조용히 숨죽이며, 완벽해져야한다고 다그치며, 완벽해지려고 안간 힘을 쓰고, 그래서 그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 쪽으로 나를 거의 매일 끌어다 앉혀놓았다. 그러나 완벽해지지 못하는 나는, 더 노력했으며, 노력해도 노력해도 완벽해지지도 못하고 더 미숙해져 갔으며, 그러면 또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마음 속의 목소리가 나를 꾸짖었다. 그래서, 계속 슬펐다. 그리고 자주 길을 잃었다. 길을 겨우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눈 앞에 나타난 길은 다시 여러 갈래였고, 나는 다시 주저앉았다. 주저 앉아있으면 다시 길이 멀어질까봐 두려워 얼른, 없는 힘을 일으켜 겨우 겨우 오십년 이라는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왔다. 허나, 장하다.

 

이제 여기에 서서, 지금에 맞닿은 몸과 마음으로 구겨진 마음을 일으켜 그래도, 살아보겠노라고 걸어온 나를 쓰다듬는다. 맑은 된장국과 비슷한 따스함과 담백함으로, 나를 껴안는다. 결국 내가 그리도 그리웠던 장소는 였고, 내가 슬펐던 이유는 를 떠나 빙빙 도는 것에 있었으며, 밖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어 를 바라보아 주었으면 덜 외로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벌써부터 사랑스러운 라고 말할 수 있는 든든함과 평온함이라고, 그마음이 가슴 깊숙이 장아찌처럼 박혀 있음도 종종 일상 속에서 맞닥들이고 있어 참 좋다고.

 

수없이 힘들고, 아픈 시간이 있어 지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인생이 나선형이라면, 지금까지 걸어온 구간이 혹은 지금 걷고 있는 구간이 아주 아주 굴곡이 평행선 같은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구간이라 하더라도, 내가 나의 관찰자가 되어 그 구간을 통과하며 애쓰고 있는 나를 쓰다듬을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한다. 얼마나 힘들어? 아이구, 애 많이 쓴다. 사랑하는 나야... 사랑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 자체로 되고 싶었던 사랑덩어리... 그것이 지금의 나라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꿋꿋이 걸어온 나에게, 키 큰 아름드리 느티나무 초록 이파리의 반짝거림의 갈채를 보낸다. 핸들을 돌려 어느 전봇대에 부딪힐까? 눈물 가득한 눈으로 찾다가도 정신 차리고 똑바로 운전하여 죽지 않고 살아남아, 받고 싶었던 사랑을 이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지혜를 만난 나에게, 지구별 바닷가 모래알 수만큼의 반짝이는 별빛으로 축복을 보낸다.

 

한껏 축제의 향연을 펼치는 마음이다가도, 세상이 이대로 흘러가도, 세상이 내일 먼지 하나 없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일상을 그저 살아가겠지 하는 평정심의 마음이다가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만나는, 씽크대 안에 말라있는 코코아 담아 먹은 머그잔, 아침에 놓여있던 그대로 식탁 위에 놓여있는 반찬통, 아직 수건함에 들어가지 못한 어제부터 거기에 있던 잘 개어진 수건들, 아침에도 얼굴 못보았는데 방마다 찾아들어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아이들 얼굴, 이것저것 차려놓았는데 어쩔수없이 식사하게된 사람처럼 시큰둥하게 밥 먹는 식구들 얼굴, 어제 한 싸움을 오늘도 또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말 싸움... 아주 사소한 것에 자극받아 자주 헝클어지려하는 마음을 씨익 웃으며, 마음속에 여유로운 곳간 만들어 놓은 듯 다시, 사랑스러운 그 자리로, 그 곳간의 여유로 나를 바라보거나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를 본다. 내가 나를 본다. 으흐흐.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내가 바라는 사랑을 받아본 를 이제 만난 나는, 세상을 다 품은 듯 여유롭지만, 한 줄기 바람 같은 자극에도 곧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을 영점일초도 소요하지 않고, 자동으로 떠올리고 그렇게 행동한다. 감옥에서의 완전탈출을 아직, 하지 못했기에... 탈출했다가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감옥 속으로 떡하니 다시 들어가 앉아있다고나 할까... 아직,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동 습관이 되지 못했기에, 올해 수많은 우여곡절과 눈물과 아픔과 고통 속에 다시, 되풀이하여 허우적거릴 일 것이다. 그러나, 내 삶에 고통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고통에서 빨리 나가야해, 서둘러라고 밀어내기보다, 고통을 내가 잘 겪어낼 수 있도록 나를 품어주고, 많이 힘들지? 내가 함께 울어줄게라고 말 걸어주며, 좀 앉아있다가 천천히 가도 괜찮아, 너에겐 쇠털처럼 많은 날들이 있어, 라고 토닥일 터이니...

 

한 번 맛본 사랑을 또 맛보고, 더 맛보고, 그것으로 잔칫상을 차려, 나의 이웃들과도 가끔은 나눌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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