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미니즘 도서관

<페미니즘 도서관① > 202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기획 "충북 음성 여성활동가들을 만나다"- 날림아트 나유정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3. 7.

 

2022년 페미니즘 도서관 첫 번째는 충북 음성지역 여성활동가의 이야기 입니다. 여성 운동 안에도 존재하는 다양성과 지역격차를 조명하고 지역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역인지 알리고 싶어요." ① - 날림아트 나유정
202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기획 "충북 음성 여성활동가들을 만나다" ② - 음성여성농민회 김나경
202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기획 "충북 음성 여성활동가들을 만나다" ③ - 문화공간 도토리 숲 윤순현
202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기획 "충북 음성 여성활동가들을 만나다" ④ - 음성 여성회 동지팥죽 홍영숙 

 

 

 

음성에서 진행하는 문화활동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성에서 보기 드문 청년, 유정 씨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다양한 활동에 다양한 역할로 나타납니다. 문화활동을 촬영하기도, 연극의 배우로 등장하기도 하고, 함께 행사를 기획하고 음성 사람들의 삶을 인터뷰 하기도 합니다. 20대 초반 여성으로 어떻게 음성에 정착해가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유정 씨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학생활 2년, 자취 2년 벌써 4년 차인데 전 아직 음성에 살아가는 게 설레여요. 살아갈 곳을 처음으로 선택했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준 동네이기 때문에 애착이 큰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전라남도 무안에서 자랐어요. 음성과 인연이 시작된 건 감곡면에 있는 강동대에서 영상미디어를 전공하면서에요. 이 전공은 서울, 경기권이 아니면 일자리를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거든요. 취업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음성에서 활동하는 지역 단체들을 만났어요. 그때도 여성의 날이었어요. 2019년 3.8 여성의 날 기념으로 음성에서 밴드 공연과 연극을 한다는 현수막을 봤어요. 당시에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서울로 시도때도없이 다닐 때였거든요. 솔직히 "아니 지방에서 무슨 연극을 한다는 거지?" 싶었어요. 그 공연은 중년 여성들로 구성된 시민극단 '에고머니'의 공연이었어요. 배우들이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독백으로 풀어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고 슬프더라고요. 공연이 끝나고 한참 극장을 서성이다 있는 용기를 다 짜내 제 소개를 했어요. "강동대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있는데 사진이나 영상촬영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왼쪽) 2019년 3. 8 여성의 날 기념 연극 <엄마의 책>포스터  (오른쪽) 당시 음성 금왕에 위치한 '소극장 하다'의 전경

 

졸업을 앞두고 대학과 연계된 산업체에 인턴을 나가야 했는데 인턴을 할 수 있는 곳이 모두 서울에 있었어요. 서울 연고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달방살이를 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무리이기도 하고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소극장 '하다'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도록 교수님을 설득했어요. 영상과 직접 관련된 업체도 아니고 서울 경기권에 있지도 않았지만 제가 거기에서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했어요. 그렇게 한 달 동안 직장인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어린이 극단 무대 디자인과 공영촬영 등을 진행하며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활동가들과 지역주민과 가까워지게 되었죠. 

 

 

 

학생 때 만든 작품이라도 지역주민과 협업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에 민망하기보단 자랑스러워요.

 

 

아무래도 작업을 할 때 특히 학생일 때 항상 섭외과정이 어려워요. 배우나 장소 모두요. 검증된 단체나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거절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이 걱정되지 않았어요. 지역에서 함께 활동한 분들이 거절하지 않고 함께 해주실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배우, 장소나 공간 등을 지원해주셨어요. 저는 그렇게 음성 지역 단체와 활동가들의 배려와 지원으로 졸업할 수 있었어요. 

 

 

 

단편영화 '마법 냄비'의 장면, 지역 단체에서 제공해 준 장소, 함께 활동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모습

 

 

음성에서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이나 경기도가 아닌 음성에서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학 교수님, 함께 활동하던 단체의 도움으로 개인사업자를 내고 <날림아트>라는 1인 미디어 영상 기획사를 만들게 되었죠.

 

 

아카이빙 작업, 영상 컨텐츠로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날림아트>를 만든 첫해에는 세월호 다큐 '그 날, 우리는'을 제작했고 소이초등학교에서 음성지역의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초등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자서전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많은 것들을 영상으로 대체하면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모니터로만 만나야 하는 상황이 속상했어요. 그런데 제가 가진 역량이 시대를 기록하고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배우면서 더많은 사람을 영상으로 만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음성에는 제 나이대 여성들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여성 청소년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제가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죠. 그렇게 하나둘씩 알게 되는 폭력의 경험들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주 답답했어요. 제가 청소년기 한 경험들, 들었던 이야기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많이 좌절하고 후회했어요. 처음에는 정말 비밀유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후회가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나,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센터와 연결되지 못해서, 경찰의 부족한 대응과 태도 때문에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상처받고, 지치고, 사건 대응을 중단하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게 보호하는 것이 었을까? 애들을 설득해서라도 주변의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적어도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여성 청소년들에게 인지시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더라고요. 자기 탓이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개인을 탓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다시 한 번 의심하는 것, 그게 가장 속상했어요. 

 

 

(왼쪽) 음성 청소년 극단 '그린나래'에서 연출 겸 배우활동을 했다.  (오른쪽) 음성 어린이 극단 공연을 촬영했다.

 

 

 

저는 여성들이 새로운 도약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요.

 

 

제가 집 막둥이에요. 타 지역에서 혼자 살아가기로 했을 때 어머니가 정말 많이 걱정하셨어요. 뉴스에는 여성살해, 성폭력 이야기가 자주 나오잖아요. 연락이 안 닿아 엄마가 걱정하면 저는 반사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해요.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닌 걸 알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죠. 

 

주변에 독립이 정말 필요하고 절실한 사람들은 20대 여성인데 정작 홀로서기를 가장 많이 두려워 하는 게 20대 여성이기도 해요. 한번은 엄마한테도 "엄마도 새로운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아?" 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엄마는 음식장사를 하시는데 아버지의 지연에 많이 의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곳의 오래된 인연과 추억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혼자 다른 지역에 나가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엄마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동네 이모들한테, 시댁살이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하는 할머니들에게도 듣는 이야기죠. 모두들 유쾌하게 말씀하시지만 들어보면 말도 안 되는 경험도 많아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유정씨

 

 

제가 고등학교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었어요. 사춘기 때였어요. 그 덕에 여성주의와 인권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고 내가 그동안 겪었던 게 폭력이고 혐오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지금도 제 친구들과 성적 이슈, 이성 교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된 성인지 교육을 못 받았는지 느껴요. 아르바이트하는데 사장님이 성적으로 접근하는 이야기, 이제 막 들어간 직장에서 상사가 "너 페미니스트냐"며 사상검증을 하는 이야기,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야기, 남자친구가 피임을 안하려고 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일상처럼 나누죠.

 

제가 느끼기에도 페미니즘에 대해 또래 남성들이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성들은 그냥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무서워할까요? 여성들은 왜 계속 두려워해야 할까요? 왜 부모들은 계속 딸 걱정을 해야 할까요? 

 

 

 

 

 밤길이 밝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게 왜 음성이 여성친화도시인 이유죠?

 

 

길을 가다가 밤에 가로등 불빛을 보고 음성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음성이 왜 여성친화도시인지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음성에서 여성인권침해와 관련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전 잘 몰라요. 갈만한 곳이 없는 것인지 홍보가 부족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밤에 가로등이 많다고 해서 여성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며 음성에서 살기를 택하지 않아요. 저에게 음성이 여성친화도시라서 체감할 수 있는 건 가로등 불빛으로 홍보하는 것밖에 없어요.

 

'여성친화도시'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실행하는 여성정책을 활성화시키고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도시 공간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여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되었다. 음성군의 경우 2017년 여성친화도시에 지정되었다. 

 

 

 

저는 음성 생극면이 재미있는 동네라서 살아요. 사람들에게도 이곳이 재미있는 동네인 걸 알리고 싶어요.

 

 

제가 살던 고향은 저에게 재미있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친구나 가족마저 이곳에 없으면 나에게 고향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되었죠. 지금 사는 음성 생극면은 재미있는 동네에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펼치는 다양한 활동이 설레이 고 즐거워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오래된 아파트인데 이주노동자가 많이 사는 아파트에요. 이주 노동자들이 저녁에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면 그것도 재미있어서 듣고 있어요. 

 

음성에 거주하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공장, 산업단지에 다니기 때문에 음성 면 단위에 독립해서 살면서 영상, 연극과 같은 문화활동을 하는 젊은 사람을 궁금해하세요. 음성에 자리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르신들이 저에게 보내는 관심과 기대, 배려들이 있어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다들 제가 힘들거나 심심하진 않은지 많이 물어봤어요. 그때는 '난 재미있는데 왜 그런 걸 물어보나' 싶었는데 요즘은 조금씩 느끼고 있어요. 기존의 관계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기 보단 제 또래의 친구나 동료가 없다 보니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공감하고 나누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나의 행동과 태도가 지역에 사는 청년을 대표하게 될까 봐 우려스럽기도 하죠. 

 

 무엇보다 지역은 활동하는 청년들이 자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청년들이 지역에 살아가려면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해요. 어려운 일이에요. 문화예술이라는 장르 자체도 거주하는 주민에게 생소한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청년은 더더욱 생소해하죠. 그래서 저는 지역에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꾸준히 이야기 하려고 노력해요. 나중에라도 저와 같은 청년들이 늘어날 때 어른들이 "예전에도 이런 애가 있었지" 하고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청년들을 일자리로만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은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알 기회가 필요해요. 

 

저는 지역에 제 또래 청년들이 꼭 음성에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작 음성에서 학교에 다니는 청년들도 음성에 대해, 지역에 대해 잘 몰라요. 지역을 알아갈 기회 자체가 없어요. 저도 지역 사회단체의 행사가 없었다면 알게 될 기회가 없었을 거에요. 지역에서 청년들을 알바, 공장으로만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를 좋게 기억하도록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참여할 기회가 많아져야 해요. 

 

집 근처 5-60대 주민의 동네 사랑방 같은 편의점이 있어요 그 편의점에 가면 주인이 저에게 물어요. "아가씨에요, 아줌마에요?" 처음에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에게도 드디어 이 질문이 왔구나' 생각했어요. 만날때 마다 물어보시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가도 "삼촌 요즘 그런말 하면 큰일나요"라고 말하면 아차 싶은 반응을 하죠. 어르신들도 제 말을 들어보고 싶어할때도 그렇고 이렇게 조금씩 변하는구나 생각해요. 

 

제가 음성에 자리 잡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지역의 청년지원이 좋아서, 여성 치안이 좋아서 온 게 아니에요. 여기에 있는 재미있는 일과 사람, 그리고 나를 도와주겠다고 손 내밀어 준 활동가분들과 동네 주민들 때문에 자리 잡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음성군에서 자신들이 어떤 문화정책 만드는 것보다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 주민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소년들이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곳, 부모 세대와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곳은 청소년, 청년들의 현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부족해요. 특히 여성청소년들이 너무나도 큰 위험에 처해있어요. 이곳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현실도 막막하죠. 실제로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책,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꼭 성폭력과 관련된 사건이 아니더라도 좁은 지역에서 소문날까 봐 두려워하지 않고 경찰과 기관에서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제가 청소년이었을 때 처럼 성, 인권에 관련된 교육이 부족한 상태로 사회에 뛰어들지 않도록 깊고 자세한 교육과정도 필요해요.

 

저도 이제 겨우 스물이 넘었는데 애들한테 무슨 애길 얼마나 잘해줄 수 있겠어요. 저는 청소년들이 이야기할 곳이 생각보다 없어서 이야기를 터 놓을 수 있는 곳, 부모 세대와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사회 초년생이라 궁금한 것도 많고 전라도와 달리 다른 지역 정서를 만날 때도 많아요. 음성에서 살면서 다양한 경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하나씩 깨달아 가는 과정이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너무 좋아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