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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도서관

<페미니즘 도서관③ > 2022년 3월 8일 여성의 날 기획 "충북 음성 여성활동가들을 만나다" ③ - 문화공간 도토리 숲 윤순현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3. 10.
2022년 페미니즘 도서관 첫 번째는 충북 음성지역 여성활동가의 이야기입니다. 여성 운동 안에도 존재하는 다양성과 지역격차를 조명하고 지역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 

 

 

"제가 사는 지역이 얼마나 재미있는 지역인지 알리고 싶어요." ① - 날림아트 나유정
"제 칼날은 무뎌지고 있지만 자주여성의 원칙 아래 가늘고 길게 가려고요." ② - 음성여성농민회 김나경
"저는 도토리 숲을 지키는 윤순현입니다." ③ - 문화공간 도토리 숲 윤순현

 

 

 

안녕하세요. 저는 도토리 숲을 지키는 윤순현입니다.

 

 

   

'도토리 숲'은 지역 아동과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음성지역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도토리 숲은 2013년 작은 도서관 운영을 시작으로 서점,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카페는 도토리 숲의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최근에 독립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앞으로 서점의 역할이 중요해요. (웃음) 3, 4개월에 한 번씩 도토리 숲이 위치한 생극면 응천공원에서 도토리 시장도 열립니다. 도토리 시장은 지역의 경계 없이 운영되고 참가자가 직접 물건을 사고팔며 자신의 다양한 활동을 알리고 소통하는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어요. 지역은 생산물, 공예품도 팔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학용품을 팔아 티벳 난민을 돕는데 후원하기도 했었죠.

 

 

음성 생극면에 위치한 도토리 숲 전경

 

 

 

 초창기 2, 3년은 작은 도서관 지킴이가 자원 활동(무급)으로 운영해왔는데 당사자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다른 생계형 일들을 하게 되고 작은 도서관, 도토리 숲을 닫는 일이 늘어났어요. 이러면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어렵겠지만 그래도 상주하면서 카페를 통해 수익구조를 마련한다면 사랑방같이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냈죠.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마을학교 사업 같은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도토리 숲을 거쳐 가는 사람들과 관계가 쌓였어요. 온전한 인건비를 보존하는 것은 어려워도 이렇게 도토리 숲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의도했던 것이 아닌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도토리 숲이 풍성하고 따뜻한 문화공간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함께 해온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었어요. 경력단절 여성의 재능으로 다양한 수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리고 엄마들의 필요에 의해 여러 수업을 열기도 했어요. 귀농 귀촌 했는데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없어서 찾아왔던 이들이 오히려 강사가 되었어요.

 

도토리 숲에서는 성인 통기타 동아리, 어린이 과학교실, 목공교실, 그림강좌, 각종 공예강좌, 독서나눔 동아리, 영화동아리, 손뜨개 모임 등 다양한 교육 및 문화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도토리 시장'의 샐러(판매자)도 90퍼센트가 넘게 여성이에요. 여성들은 정말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능력을 펼칠 자리도 충분하지 않아요. 경력단절 여성들이나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들의 현실에 적합한 일자리도 지역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고요.

 

 

'도토리 카페'가 최근 도토리 숲에서 독립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관광두레사업>에 선정되면서 카페에서 '주전부리 제작소'를 운영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주전부리제작소'는 저를 포함해 도토리 숲을 함께 가꿔오던 여성 3명의 독립 기회이기도 해요. 잘 독립해서 음성지역의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성장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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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부리제작소'는 오란다, 강정과 같은 수제 간식을 만들고 판매한다.

 

카페가 도토리 숲에서 독립하면서 '작은 서점'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서점을 만들 때 수익 목적도 있었지만, 옛날 동네에 있는 문구사 있죠? 그런 곳이길 원했어요. 이제는 책이고 문구품이고 모두 온라인을 통해 구매하잖아요.

 

생극면에도 문구사가 남아있었는데 그 두 곳도 3년 전, 5년 전에 없어졌어요. 이런 목적과 지향을 지키면서 수익도 나려면 지역 학교와 잘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학교는 생각보다 보수적인 곳이죠. 그동안 이어져 오던 관행들도 변화하기 쉽지 않아서 학교에 책을 납품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거의 수익이 남지 않는 구조에요. 

 

 

 2021년 12월에 음성여성회 동지팥죽 주최로 진행되었던 제1회 음성여성영화제  

 

 

 여성 안에도 다양한 격차와 관점의 차이가 있어요. 서로 변해가는 과정, 함께 성과를 이루는 기쁨이 모임을 지속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앞서 인터뷰하신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동지팥죽'이라는 음성지역 여성모임을  참여하고있어요. 함께 페미니즘 공부도 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죠. 작년에는 음성에서 처음으로 '여성영화제'를 했어요.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영화 하나를 정하는 것부터 각자 차이가 크더라고요. 여성들 안에서도 시선이 다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점이 많았는데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변화해가는 경험을 했죠. 그리고 영화제도 잘 끝마치면서 함께 이룬 성과들로 보람찼고요. 그렇게 모임활동을 계속 이어가도록 결심하게 되었어요. 

 

 

여성영화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있어요. 저희가 영화제의 모든 것들을  2~300만원으로 준비했어요. 정말 적은 돈으로 힘들게 이루어냈는데 음성이 여성친화도시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이렇게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려는 사업들을 지원해주지 않아요. 지자체에서 주민들이 직접 하는 사업에 관심이 부족해요. 그리고 지원해주더라도 연속성 있게 지원해주지 않아요. 이러한 사회문화 활동은 지속해서 운영해야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관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활동, 성과만 잡으려고하지 그 사업을 진행하는 곳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아요. 어떤 방식의 지원이 지역주민을 성장시키고 의미 있게 돈을 쓸 수 있는지 관이 민과 함께 고민해야 해요.

 

 

. 도토리 숲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윤순현 선생님

 

 

 

공동체는 각자의 임무를 수행해내는 단위가 함께 모인 것

 

 

저희 남편과 대학교에 다닐 때 '공동체'가 참 유행이었어요. 모든 모임이나 조직에 '~공동체'라는 이름이 붙었었죠. 사실 공동체라기보단 단체인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각자의 임무를 수행해내는 단위가 함께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와 남편은 당시 저희 교수님이었던 가평의 한 교회 목사님 밑에서 일하면서 공동체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공간을 따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죠. 또 '실패'라는 개념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현실을 찾아 떠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공동체는 쉽지 않아요. 경제력으로 시작하거나 경제적인 것 때문에 깨지는 경우도 많죠. 공동체는 정말 생각과 가치관, 삶의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이 다수여야 그나마 유지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왼쪽은 생극교회의 안치석 목사님, 오른쪽은 윤순현 사모님 (사진출처 한국기독공보)

 

교회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문화공동체가 아닌 세상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베풀 수 있는 공동체를 원했어요.

 

 

그때 지내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지금의 음성 생극면에 위치한 '생극교회'로 오게 되었어요. 처음 교회에 왔을 때 교인이 4~5명 정도 였고 개척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기존교회의 성향이 있었죠. 10년 정도 목회를 하다 보니 밖을 향해 숨 쉴 곳이 필요했어요. 교회공동체와 관련된 문화 활동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보통 규모가 큰 교회에서 가능해요. 그리고 전도를 목적으로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요. 교회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베풀 수 있는 문화공동체를 원했어요. 신앙공동체는 대부분 폐쇄적이지만 마을공동체처럼 열린 공동체도 있잖아요. 

 

 

그때 교인의 도움으로 창고로 사용되던 15평 남짓한 공간에 남편이 영감을 얻어 도토리 숲이 시작되었어요. 내부를 하나하나 직접 공사했고 교회를 찾아왔던 많은 인연들, 우리가 모르던 사람들까지 엄청난 도움으로 도토리 숲을 열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에요. "나도 어릴때 이런 시골에서 자라보았다"는 이유만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공간 사용이나 큰 비용을 선뜻 내어주기도 했어요. '도토리 숲은 전도를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처음부터 쭉 지키면서 교회만을 위한 문화공동체가 아닌 지역, 세상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오고 있어요. 

 

 

도토리 숲에 위치한 카페 내부 모습

 

 

도토리 숲과 함께 생극지역에 자리 잡으면서 어려운 것들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도토리 숲이 지역사회에서 잘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지역의 다양한 주민 활동을 참여했었는데 남성 중심의 의사결정구조가 많았고 여성 주민자치활동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외부 사람의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어렵더라고요. 그렇게 외부활동을 줄여나가고 도토리 숲 안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어요. 

 

 

농촌 여성들이 보육 외에도 정말 많은 노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항상 보육의 책임은 당연히 여성에게 전가되죠.

 

 

특히 농촌 여성들의 삶을 보면 공감되고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요. 농촌의 여성들이 정말 많은 노동을 하거든요. 아이도 키우고, 농사도 하고, 남편도 챙겨야 하고.. 아이에게 집중하면 여러모로 더 좋은 것들이 눈에 보이는데 정말 쉽지 않은 환경이에요. 저희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한의원이 있어요. 저도 다니는데 한의사 선생님이 여자 환자들이 훨씬 많다고 말해요. 남성들과 비슷한 질환인데 여자들은 쉬지를 않고 일을 하니 낫지를 않는거죠. 그리고 할머니들은 비가 올 때만 병원에 온대요. 그때는 일을 나갈 수 없으니까 그때 병원을 가시는 거죠. 

엄마도 정말 고생해서 지내는데 아이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그게 또 다 엄마의 책임으로 돌아가요. 이 책임에 아빠는 바깥사람으로 빠져있어요. 농촌 지역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도 없고 학원도 마땅치 않아요. 저만해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어요. 일이 끝나고도 집에 가서 당연하게 가족의 식사를 챙기고, 아이들이 당연하게 저에게 "엄마 왜 집에 먹을거 없어?"라고 물어볼 때 불쑥 왜 나는 24시간, 365일을 노동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왼쪽) 도토리 숲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 (오른쪽) 도토리 숲 문화공간 활동을 그린 작품

 

도토리 숲이 삶에 주는 의미는 정말 커요. 도토리 숲을 유지해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죠. 

 

초등학생부터 도토리 숲 작은 도서관을 다닌 친구가 있었어요. 책 읽는걸 좋아해서 정말 책을 많이 읽었어요. 여기 있는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일 거에요. 도토리 숲에서 하는 행사에도 매번 참여했었고 봉사활동도 많이 했었죠. 그 친구가 최근에 대학생이 되었는데 원하는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성장했어요. 그 친구의 삶에 도토리 숲이 영향을 조금이라도 줬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뻐요.  여기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시골이라 어떤 결핍을 가지고 컸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문화적으로 충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일부의 사람들이지만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저희를 외부에서 온 어떤 사람으로, 적대적으로 대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솔직히 '왜 그렇게까지 대할까'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아요. 종종 '돈도 안 되는 걸 왜 저렇게 열심히 할까?', '이런 식으로 하면 돈이 꽤 될 텐데'라는 이런 말과 시선을 받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도토리 숲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한 뜻을 가지고 오랫동안 버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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