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톡, 탁.
잔디
어느 날, 딸 아이가 갑자기 ‘툭’ 말하였다. “ 내가 4, 5학년 때 엄마랑 아버지가 매일 싸워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언제 이혼하려나 불안하기도 했고.”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말을 건네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렀다. ‘내가 언제 싸웠다는 것이지?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 내어 싸운 적이 없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그때의 나는 나와 힘(권력)이 엇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상대들에게 듣기 좋은 말은 자주 건넸지만, 상대가 들어서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말은 내 생각 속에서만 빙빙 돌리는 그런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딸 아이가 3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툭’ 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이 이야기가 나에게 걸어오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며칠 동안 곰곰 생각하였다. 나의 결론은, 나는 말하지 않는 말과 말하지 않는 태도로 싸우고 있었구나. 그 공기로 집안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채우고 있었구나. 아이고...
돌아보면, 상대들이 물어오는 질문에 가령 “오늘 점심에 뭐 먹을까?”하는 질문이 있다고 치자. 나는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묻는다. 그리고, “오늘 점심에 뭐 먹을까?”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나의 첫 생각은, 상대의 오늘 몸 상태를 확인하고, 나의 상대에게 오늘 따뜻한 음식이 필요할지, 매운 음식이 필요할지 생각하거나, 저번에는 그 음식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이 음식이 먹고 싶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면서, 상대에게 다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의 상대들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거나, “네가 먹고 싶은 거 말해 보아.”라고 말하지만, 나는 상대가 먹고 싶은 것이 내가 먹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직도 상대가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 돌리기에 바쁜 상태로 있다. 그렇게 어쩡쩡하게 있다가 뭔가 먹으러 가고, 그렇게 나의 한 끼를 먹는다. 예전보다 이 증상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생각 패턴은 여전히, 상대에게 맞추어져 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또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나에게 주고 싶어서이다. 또, 그 말을 나의 상대들에게도 ‘톡’ 건네고 싶어서이다.
또 돌아보면 밤에 자다가 갑자기 깨우는 어떤 소리가 나를 흔들어 일어나 보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혼나고 있고, 대답하라 해서 기껏 생각해서 대답했는데 그 대답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대답의 내용에 열 살 아이가 받기엔 너무 힘든 비난을 보내니, 차라리 태도에 대해 비난을 듣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말없이 무기력하게 무릎 꿇고 앉아 몇 시간이고 똑같이 반복되는 소리를 듣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딴생각하던 4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연결선상에 있다. 물론‘탁’하고 그 연결선을 끊어내고 다른 생각과 새로운 이야기를 연결하는 길을 내기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그곳에 가서 무기력하게 상대에게 맞추려 애쓰는 슬픈 자리에 가서 앉아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럴 때는 지금까지의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또 공부하고 그 공부를 일상에서 살아내려 노력하는 내가 기뻐서 그 슬픔의 자리에 있는 나를 공감하고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나 그 깨달은 자리를 기록하고 나의 상대들과 나누려고 기록하려 자판을 “톡‘, ’톡‘ 두드린다.
어린 자녀를 거친 손으로 흔들어 깨우던 그때의 나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다.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남동생뻘.(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가난하였고, 지금의 내가 한 공부와는 다른 인생의 공부를 한 사람이었다. 철마다 다르게 택배를 보내오는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때의 아버지를 지금의 내가 만난다면,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중학교를 겨우겨우 졸업하고, 여러 직업 겪어내며 힘들었지? 군대에서도 얼마나 힘들었어? 혼자만의 삶을 꾸려 가기도 힘들고 어려웠을 텐데 어린 여동생도 건사해야 했으니 부담스러웠을 거야. 조촐한 살림으로 시작해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해 오느라 고생 많았어. 공부 많이 한 후배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견디어야 하는 직장에서도 스트레스와 어려움 많았을 텐데 그래서 ‘신경성’이라는 병을 얻어 해마다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살아내느라 고생 많았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정 경제가 어려우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태겠다고 아내와 딸이 목욕탕에서 일하는 것 눈 감고 아무 말 없이 보느라 애간장이 다 녹았겠다. 큰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가정에 좀 도움을 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텐데 대학 가고 싶다고 말하는 거 들으면서 가슴이 무너졌을 것 같아. 대학 공부시키느라 고생 많았어. 애, 많이 썼어.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아프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아이들에게 눈물로 사과하는 용기 낸 것 고마워. 지금까지 살아와 줘서 고마워, 동생아. 그리고 삶 속에서 네가 건넨 유머와 웃음 정말 멋져. 덕분에 많이 웃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버지, 라고 시작하는 문자를 ‘톡’하고 보낼 수 있는 지금도 슬프고 무기력한 자리로 곧 돌아가기는 하지만, 나에게 희망은 여전히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사주는 커피를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고(먼저 냉큼 계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저 맛있는 거 “얹어” 먹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얼어붙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것으로 대접할 수 있으며(그것이 물 한 잔이라 하더라도 창피해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저 잠깐만 방문해도 될까요? 라고 묻고 한달음에 달려가 수다할 수도 있고, 대화의 자리에서 상대의 느낌을 내가 책임지려 하기보다 상대가 기쁘든, 불편하든 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가만히 있을 수 있다. 무엇을 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 얼어붙고, 무기력한 나에게 그 순간에 말 걸 수 있다. “지금, 어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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