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잔디
한낮부터 해질 때까지
수영장에 푸웅덩, 포옹당 빠져
얼굴이 빨개지도록 노는 아이들을
한 눈만 뜨고 보는 돌멩이처럼 앉아서 보던 나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풀벌레소리만 가득한
깜깜한 밤
아이들이 놓고 간 튜브를 끼고
수영장으로 냅다 뛰어 들었어
앗 차가워, 하며 혼자 수영장 바닥을 짚고 이리저리 헤엄치다 돌다 걷다가
튜브를 빼고 살며시
뒤통수를 물에 담그고 팔, 다리를 쭉 펴고
힘을 빼고 둥둥 떠서
눈만 깜박깜박 밤하늘을
바라보았지
풀벌레소리가 딱 멈추고
별빛 이야기가 들려왔어
물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다가왔지 뭐야
고개를 들면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담그면 별빛 이야기가 다가오고
고개를 들면 풀벌레 소리가 나를 감싸주고
고개를 담그면 별빛 이야기가 나를 안아주고, 이런 느낌 처음이야……
꾸
르
륵
어푸 어푸,
그만,
물 밖으로 도망쳐버렸어
돌멩이만 들었을지도 모를 별빛 이야기를 꺼내보며 낮잠 자는 돌멩이처럼 수영장 옆구리에 앉아있다가도
낮에 아무도 없을 때
가끔 다시, 수영장에 둥둥 떠 있는 걸
비둘기에게 들켰다는 건 비밀이야
또 가끔 혼자 들은 달빛 이야기를
부엉이에게 전해준 건
나만 아는 비밀이야
- 「소문」 전문
씻기거나 씻을 때를 제외하곤 물에 젖는 것도, 물이 몸에 닿는 것도 발목까지만 물에 담그는 것조차도 싫어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구경만 하던 내가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다. 물속은 생각보다 아늑하였고, 생각보다 그 축축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이었다. 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낮에도 너를 보고 있었어. 낮에도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어. 해보다 희미한 빛이지만 나를 한순간도 비추지 않은 적이 없는 별빛이 나에게 주는 위로 때문에 물속에서 물이 흘렀다. 눈물이 흘렀다.
일곱 살 때였을 것이다. 여섯 살 때였을까? 동네 어린 오빠들이랑 집 마당에서 보이는 얕은 강으로 물놀이 갔던 날. 튜브는 없고, 주부라고 부르던 타이어 튜브를 동네에 한 아이가 갖고 있을까 말까 했던 그때의 물놀이. 구명조끼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던 그때. 좀 더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언니 오빠를 따라 들어가다 어푸어푸 물에 잠겨 죽을 것만 같았던 그때. 키 큰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었고, 간신히 물 밖으로 나왔고, 그때 허겁지겁 물 밖으로 나오면서, 오른발 세 번째 발가락에 생긴 흉터자국은 아직도 그날의 공포를 불러온다. 그 강물, 그 매캐한 느낌, 피가 나서 절룩거리며 집까지 걸어갔던 거, 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식을 잃을까 두려웠던 나의 부모는 다음부터 물놀이를 가지 말라고 내가 느낀 공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야단을 치고, 나의 마음은 달팽이처럼 딱딱한 집 속으로 쏙 들어가고…… 누가 구해 주었는지 지금도 모르고, 그때 같이 놀았던 언니 오빠들은 고향에 가도 만날 수 없어서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도 없지만, 그날의 기억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물과 관련하여 나의 곁을 맴돌았다.
우리 집 옆에 있는 마을 공용 수영장에서 놀며 물에 둥둥 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몸과 물을 믿는 사람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한번 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밤에 몰래 아무도 모르게 수영장에 들어가 물속에서 헤매다 딸아이처럼 해보았다. 오, 된다. 오~! 했다. 순간, 꼴 꼴 꼴. 물속에 빠졌지만, 그날의 공포가 다시 오지는 않았고, 나는 다시 해보고, 또 다시 해보았다. 그리고, 물속에서의 고요를 느꼈다. 어쩌면, 그 고요는 잉태되어 어머니의 ‘포’속에서 들었을 소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고요에 감싸인 순간, ‘포’속에서의 고요와 물속에서의 고요가 닮아있어 더 큰 위로를 받았다고 누군가에게 막 알리고도 싶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거나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가 위로를 준다.
이제는 지나갔지만, 아직 지나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나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여전히 맴돌아 나도 같이 그 이야기 따라 맴돌며, 외롭고, 화내고, 기쁘고, 무섭고, 행복하고, 무겁더라도 그 이야기와 함께 춤추고 있다는 것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지나갔지만 지나가지 않은 이야기 위에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새롭게 쓸 수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나간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슬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는 나를 따사로이 안아주고,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써도 괜찮다고, 깊은 숨 뱉어내며,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다시, 쓸 수 있어.
'소식지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뜻함을 바르기 (0) | 2023.10.25 |
---|---|
저마다 별을 품고 (0) | 2023.09.25 |
“지금, 어때?” (0) | 2023.07.25 |
나의 이야기와 나 (0) | 2023.06.26 |
<133호> 다녀왔습니다. (0) | 2023.05.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