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33호> 다녀왔습니다.

by 인권연대 숨 2023. 5. 26.

다녀왔습니다

잔디

 

친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부터 내가 자라오면서 일 년에 두 세 번은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온 사람들이 총출연하는 자리에 갔다. 태어나서 처음 발 딛는 양평 땅. 운전하면서 본 양평대교 아래 흐르는 큰물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결혼식과 강원도 나들이의 참여자는 나를 포함한 우리 집 십대 초반의 사람 두 명이었는데, 인기가 좋았다. 딸아이에게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단어로 말했다. “어이구, 엄마 닮았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저 웃던 딸아이는 기분이 어땠을지 아직 묻지 않았다. 어쨌든 늘 만나던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나의 엄마를 만나고, 엄마랑 가만히 앉아 밥 먹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편안했다. 그래도 두리번거리게 되는 눈길. 연회장 흰 벽에는 다섯 살, 여섯 살 꼬물꼬물 하던 용운이가 맹세하는 동작을 하고는 신부를 번쩍 들어 안았다 내려놓는 장면이 흐르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지난해까지 대장암 치료를 받던 은옥이 언니가 파란 치마를 입고 혼주석에 앉아 신랑과 신부의 놀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움직임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다.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 자리에 앉아있을까... 식이 끝나고, 잠시 악수하는 사이에 언니가 어떤지 묻지 못하고, 언니 아들 키우느라 고생했어, 축하합니다,란 말만 전했다. 신랑 신부랑 눈인사하려고 기다리며 넓은 로비에 서 있는 동안 나의 오래된 사람들과 또 그 사람들과 닮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그 넓은 장소에 서서 은옥이 언니의 언니, 순옥이 언니랑 스탠딩 토크를 하며, 일상에 대해 말하다 자주 삐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언니가 아주 커다란 소리로 사람들이 원래 그래, 라고 말하는데 그 소리가 마치 놀람 교향곡의 어떤 부분처럼 들려왔다. 원래 그래, 라는 말을 전에는 체념하거나 어쩔 수 없이 뒤돌아서는 말로 내 안에서 해석했었는데, 그날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꿀 수 없음으로 인정하는 말로 들려 왔다. 그래서 이 문장이 생각이 났다. “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이 이 문장을 수첩에 적어놓고 이 말이 하려고 하는 말을, 의미를 궁금해하며 몇 달간 살았던 때도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평온의 길이라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굳이 분별을 해야 한다면 이 두 가지를 분별하는 지혜를 나도 청하고 싶다.

 

순옥 언니에게서 원래 그래.”라는 사자성어를 전수받은 후 다시, 운전하며 친정집으로 가는 길. 자동차 세 대가 움직이는 관계로 휴게소에 내려 커피라도 한 잔씩 하자는 의견을 나누는데 누구는 저 휴게소, 또 다른 누구는 그 휴게소 하며 의견이 분분한데 돌아가는 길이 버겁지 않았다. 나의 원가족이지만, 또 나의 원가족이기에, 생각속에서는 그렇지 않다가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혹은 깔려있는 부담감이나 불편함이 있었는데, 아이고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저러냐, 하는 생각이 올라오다가도 아, 원래 그랬지, 하면 불편함이 어디론가 벌써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어떤 말씀도 아이고, ~? 이런 생각이 올라오다가도 아, 원래 그러셨지. 하면 아버지 뭔가 불편하세요? 하는 말이, 아 그러셨구나 하는 말이 그저 나와서 아버지도 짜증보다는 아버지의 의도를 말씀하셨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십 대 청소년 세 명과 나의 막내 동생 혜니가 왁자지껄 아이스크림 돛대 놀이를 하면서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서 우리 손자들이 이렇게 커다란 소리로 웃으며 활기 있게 놀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나서기 전 벌써 우리집 차에 뭔가 잔뜩 차곡차곡 실어놓으신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나에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또, 좋았다. “두유는, 615일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수술 후에 아침마다 우리 큰 딸이 보내준 사랑을 먹는다고 생각하며 먹고 있다.” 엄마는 가끔 그저 슈퍼에 가면 사 먹을 수 있는데, 애가 넷이나 돼서 힘든 딸한테 왜 그 부담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고는 하시지만, 아버지가 필요한 걸 다른 이유를 가져와 설명하지 않고, 아버지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시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와서 기뻤다. 좋았다. 우리가 지금 동시에 살아,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들려주고, 들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그 진정성이 좋았다. 천천히 엄마랑 살랑거리는 살랑교를 걷고 쉬다가 또 걷고, 비빔국수를 비벼 먹고 서두르지 않고 설거지하고, 또 서두르지 않는 속도록 느긋하게 운전하여 안전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또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의자에 앉아 라인 홀드 니버의 평온을 구하는 기도를 다시, 찾아 읽었다. “주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하루하루를 한껏 살아가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한껏 즐기도록 하시며, 고난이 평화에 이르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 나는 지금 새소리와 키보드 누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끔 창밖의 초록을 보며, 여기에 있다. 숨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것을 느끼고, 다음 숨을 맞으며.

 

'소식지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어때?”  (0) 2023.07.25
나의 이야기와 나  (0) 2023.06.26
<132호> 그가 나에게 갑자기, 왔다  (0) 2023.04.24
<131호> 두 번째 봄맞이  (0) 2023.03.27
<130호> 길을 나섰다  (0) 2023.02.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