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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131호> 두 번째 봄맞이

by 인권연대 숨 2023. 3. 27.

두 번째의 봄맞이

 

맑은 하늘 아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빨래를 널다 문득 낯선 색깔이 스쳐 지나간다. 하던 동작을 되감기하여 몸을 돌려 다시 보니, 노랑. ~ ,,,! 겨울동안에도 문득문득 초록빛을 보여주던 얇고 여린 풀들 그 사이로 아주 낮게 땅에 꽃받침을 대고 피어난 민들레꽃. 그 옆에 야옹하며 앉아있는 참치’.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민들레꽃과 고양이를 사진 찍었다. 이곳에서의 두 번째 봄의 첫 풍경으로. 그러고 나니, 봄까치 꽃도, 광대나물 꽃도 보인다. 지칭개 싹도 지천이고. 막내랑 교문 앞까지 같이 걸어가서는 학교 앞에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부러 구불구불 코스를 만들어 돌아온다. 돌아와서는 출근해야 해서 마음은 바쁘지만, 그보다 더 바쁜 건 봄으로 향한 눈길. 어제보다 길게 자란, 하늘로 도착하려는 마늘 싹. 하고 입을 연 매화 꽃봉오리, 은근히 초록을 품고 눈 감고 있는 감나무의 초록 싹, 밭둑에 잘도 자라는 쪽파의 싱그러운 초록. 언제 잘라 먹을까(?) 싶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민들레 싹, 달래 싹. 쌉싸름함과 코끝까지 매움을 입 안 가득 머금고 싶다. 땅 위에 펼쳐진 냉이싹의 만다라. 이제 막 얼굴을 내미는 노오란 개나리 꽃봉오리. 그리고, ~ 가슴 시린 목련의 흰 빛. 낮은 전깃줄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비둘기의 뒷모습. 빈 나뭇가지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가까이 다가가면 모두 함께 날아 가버리는 참새 일가. 떠나온 숲속의 진달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할 때쯤 벌써부터 아침 일찍 밭에 다녀오시는, 모자로 시린 얼굴을 감싼 할머니의 오늘 아침엔 바람이 불어 춥네. 혼잣말과 들려오는 자전거 바퀴 소리. ~! 수선화 초록 꽃봉오리를 빠뜨렸다. 수선화야 미안해. 너의 기다랗고 노란 가로등빛을 기다릴게. 이풍경과 마음을 고스란히,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말은 아름다움.

 

하늘을 배경으로 목련의 꽃받침까지 함께 한껏 팔을 하늘 향해 뻗어 꽃 사진을 찍는다. 휴대전화 사진 거의가 꽃 사진. 혹은 하늘 사진. 나무 사진, 노을 지는 하늘빛, 산빛.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그 찰나를 놓치기 어려워 담아 놓는다.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은 '찰나'가 일까? ‘지금’, 일까? 지금의 다른 이름은 아름다움일까? 사랑일까? 잘 모르겠지만, 벗에게 봄날 햇살 아래에 앉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곳에서 두 번째의 봄을 맞이할 동안 살아온 지난 시간들 속의 나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었고, 자주 눈물을 흘렸으며, 짧게 자주 이 작고 사소한 마을과 내 마음을 걸었으며, 주말엔 편히 누워 있어도 괜찮다고 서둘러 밥하지 않는 나를 허용하였으며, 집 주변에 자주 나타나는 야옹이 참치와 대화하고-나는 움직이는 작은 동물을 무서워하였다.-, 참치에게 줄 밥을 준비하고는 참치를 기다렸고, 기다림 끝에 나타난 참치를 반겼으며 아직 만지지는 못하지만-, 아침마다 자주 창밖을 바라보았으며, 아이들과 괜히 싸우다 그 싸움의 끝을 결국 포옹으로 끝냈으며, 괜히 화내다 화는 내어서 무엇 하나 싶어 화의 마음속에 숨은 서글픔, 서운함, 슬픔을 토닥이다 그 감정에서 돌아섰으며, 지금까지 성당에서 배웠던 교리와는 결이 좀 다른, 그래서, 보다 깊은 종교에 대한, 삶에 대한 교황님의 교리를 에스텔 선교사님과 로랑스 선교사님을 통해 다시 배우며 자비와 진실과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향한 마음을 새로이 일으켰다, 더불어 스님의 법문을 자주 들으며 지금까지 내내 끄달렸던 생각과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어질어질하던 마음을 정돈하였고 여전히 정돈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재정립하고 있다.

 

살아있는한 지속될 영성의 작업 과정을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비밀을 그저 나누어주시는 여러 선생님께도 참 고맙다. 그리고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은선씨에게 고개 끄덕이며 듣는 마음과 몸을 배우고, 모니카 언니에게는 사람과 눈 마주치며 웃음 속에 진실한 인내를 담아 전하는 것을, 석태형님께는 일상 전체에서 안 함의 함과 함의 안 함을, 광태형님에게서는 어두움 속에서도 혼자 서있을 수 있는 용기를, 뒷집할머니께는 백수를 바라보는 그런 시절에도 고단함 속에서 혼자 스스로 자신을 챙기는 너그러움을, 현진씨에게서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살아가도 나는 나로 존재한다는 온전함을, 현자언니에게서는 정말 활짝 웃는 웃음을, 글라라 자매님께는 뱃심 두둑하게 명확히 말하는 허나 명랑하게 이야기 건네는 방법을, 새봄이 아빠 엄마에게는 지난 시절 우리집 아이들 어린 시절에 그들에게 정성들이던 나의 풋풋함을, 진숙씨에게는 나의 장점을 다른 이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담대함을, 영순언니께는 집 앞에 몰래 놓고 가는 은근한 사랑의 태도를... 이루 말로 적어낼 수 없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다시, 물들었다. 숲에 사는 동안 침묵 속에서 나에게 스미던 햇살처럼, 바람처럼, 비처럼 사람 속에서, 마을 속에서 물들고 물들이고 있는 내가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믿을만 하다. 드디어 사랑하고 믿는 그 지점을 나의 삶의 지도에 표시해 놓은 나를, 나는 믿는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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