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폭포
정호승
술을 마셨으면 이제 잔을 놓고 가을폭포로 가라
가을폭포는 낙엽이 질 때마다 점점 더 깊은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외로운 산새의 주검 곁에 누워 한 점 첫눈이 되기를 기다리나니
술이 취했으면 이제 잔을 놓고 일어나 가을폭포로 가라
우리의 가슴속으로 흐르던 맑은 물소리는 어느덧 끊어지고
삿대질을 하며 서로의 인생을 욕하는 소리만 어지럽게 흘러가
마음이 가난한 물고기 한 마리
폭포의 물줄기를 박차고 튀어나와 푸른 하늘 위에 퍼덕이나니
술이 취했으면 이제 잔을 놓고 가을폭포로 가서 몸을 던져라
곧은 폭포의 물줄기도 가늘게 굽었다 휘어진다
휘어져 굽은 폭포가 더 아름다운 밤
초승달도 가을폭포에 걸리었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창비, 2021)
'소식지 > 마음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요에 헹구지 않으면 (0) | 2023.10.25 |
---|---|
오늘의 달력 - 유현아 (0) | 2023.09.25 |
나의 소원 - 정호승 (0) | 2023.07.25 |
거대한 뿌리 - 김수영 (0) | 2023.06.26 |
<117호> 무해한 덕질을 꿈꾸며_ 계희수(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0) | 2022.01.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