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원
정호승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은
철도 기관사가 되는 일이다
서울역에서 승객이 가득 탄 기차를 몰고
멀리 여수나 목포로 떠나는 일이다
신의주로 양강도 백두산으로 떠나는 일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언젠가 꼭 한번은 가보고 죽어야 하는
인간의 진리의 길을 향해
침목을 깔고 나만의 선로를 놓아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든 새벽에
기관실에 높이 앉아 바다를 향해 달리는 일이다
차창을 스치는 갈매기와 섬들에게 손을 흔들고
바다에 내린 승객들로 하여금
수평선 위를 하루 종일 산책하게 하는 일이다
무인도에도 잠시 머물러
인생의 썰물과 밀물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고
어느 봄날에 다시 기차를 몰고
평양을 지나 백두산역을 향해 달리는 일이다
백두산이 보이는 기관실에 높이 앉아
천지의 깊고 고요한 물결 소리를 듣는 일이다
승객들 모두 천지의 물가를 산책하게 해서
저마다 가슴속에 하나씩 천지를 담아
백두산처럼 높고 푸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이다
-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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