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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117호> 무해한 덕질을 꿈꾸며_ 계희수(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2. 1. 26.

 

새해 벽두부터 뜬금없이 덕질이야기를 해본다. 덕질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이미 국어사전에도 등재가 되어있다. (사전에 올라있는 건 글을 쓰기 위해 찾다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다!) 덕질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뜻한다. 덕질의 대상은 사람부터 작품, 취향, 물건 등 무엇이나 될 수 있다.

 

나에게 덕질이란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이나 공연, 방송 영상을 찾아보거나 응원하는 배우의 작품을 감상하는 소소한 활동이지만, 일상에 활력을 주는 재미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덕질의 대상은 얼마 못 가 계속 바뀌는데, 이 때문에 나의 덕질을 진짜 덕질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름 소중한 나의 덕질 라이프가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얼마 전 유명가수들의 기타 세션으로 이름을 떨치다 싱어송라이터가 된 남성 뮤지션 J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는데, 너무 취향 저격이라 쉴 때마다 그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그렇게 낮이고 밤이고 일할 때고 운전할 때고 J의 목소리와 얼굴을 찾아 덕질을 하고 있는데, 망할 놈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추천해 주는 게 아닌가?

 

꽤나 개념있어 보이던 그는 몇 개월 전 성범죄 전력이 있는 가수 이수를 옹호했다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자신이 참여한 이수의 앨범을 홍보한 일로 정정을 요구한 팬들과 설전을 벌이다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다. , 왜그랬니 대체. J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파사삭 식었지만, 원망스럽게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좋았다.

 

가수 이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이수는 우리 세대 많은 음악팬들에게 고난을 안겨준 문제적 존재이다. 극강의 노래실력과 개성 있는 음색으로 보컬의 신이라 불리며 여러 히트곡을 남긴 그가 미성년자 성매매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인기 연예인인 그의 주변인들이 그를 언급하거나 옹호할 때마다 온라인상에는 남성의 성매매를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의 가부장 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이수가 속한 그룹인 엠씨 더 맥스의 전신 문차일드노래 중 태양은 가득히라는 곡을 나는 너무도 사랑하는데, 그가 처벌받은 이후 맘 편히 들을 수 없어 진심으로 속상하다. 여행갈 때 이보다 더 좋은 노래를 찾기 힘든데. 솔직히 지금도 가끔 정말 참다 참다 한 번씩 듣기도 한다. 보컬의 신을 세상 원망하면서.

 

사실 대중문화를 즐기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제 누굴 덕질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덕질의 상대가 남성 가수나 배우인 경우 버닝썬 사건까지 갈 것도 없이 여성혐오, 여성 대상화 논란으로 인해 탈덕’(덕질을 중단하는)하는 경우가 꽤 있다. 좋아했던 대상의 실망스런 모습을 목격했을 때의 기분이란. 현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려고 덕질하는건데, 이것도 맘 편하게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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