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그간 ‘아픔’이라는 감각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정확히는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깊게 들여다본 일이 없다. 그랬던 내가 조금 달라진 건 올 2월.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지금까지 도수치료를 받으며 통증과 싸우고 있다. 이제야 아픔이라는 감각과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책 읽고 글을 쓰고 업무를 보는 일이 여전히 많이 힘들다. 의사는 이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 뼈나 근육에 문제가 없다는데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도 뒷목과 팔목이 시리다.
그러다 최근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조한진희)’라는 책 한권을 만났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간 아픈 주변인에게 나도 모르게 불편함이나 서러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주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정도로 우리는 아픈 사람에게 참 가혹한 것 같다. 너무나도 무지했고 감수성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아픈 사람이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되면서 주변에 끊임없이 미안해해야 하는 상황을 서술한다. 또한 모든 이들이 아픈 사람에게 ‘맨스플레인’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며,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이것을 읽으며 가장 먼저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장애인이 된 아버지는 여러 종류의 통증과 합병증을 달고 산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나는 그동안 아버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통증에 의구심을 가짐으로써 아버지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하반신이 완벽히 마비되어 감각이 없는 아버지는 허리나 다리가 아프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의심했다. 감각이 없는데 통증이 있을 수가 있는지 답답했다. 그저 평소 아버지의 성향대로 다리 운동 한 번 더 시켜달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으로만 치부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느꼈을 답답함 이상의 감정들이 몹시 미안하고 괴로웠다. 아버지의 몸 상태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지껄였는지... 아픈 사람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이었음을 알고 너무나도 창피했다.
나의 경우 책에서 서술하듯 자신의 경험을 내게 그대로 대입해 치료법을 처방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대부분 평소 나를 아끼던 사람들의 걱정 어린 조언이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그게 아니라면 꽤 성가신 일이다. 물론 그중에는 통증이나 장애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유효한 조언도 있었다. 사실 수많은 말들 중 마음을 가장 편하게 만들어줬던 건, 아픔에 대한 공감이었다. 나의 아픔이 의심받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상대의 아픔을 소재로 대화를 주고받던 장면을 떠올린다. 따갑고 아프다. 위로랍시고 걱정이랍시고 건넸던 말들... 무지에서 피어난 명백한 가시들이다.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참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산다 싶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까, 처절하게 반성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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