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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마음거울

<113호> 지방방송의 볼륨을 높이자_계희수(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21. 9. 30.

 

 

임대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쌓았다는 어느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임대 아파트를 향한 차별적 시선 때문이다. 담장을 쌓은 주민들을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세간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비슷한 이야기가 이따금씩 포털 메인을 장식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댓글에 날이 선다. 그 비난은 최소한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에 근거할 것이다. 맞다. 사는 곳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그런데 왜 우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숨 쉬듯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청주방송에서 일할 때였다. 전 직원이 해외 포상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전세버스에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흥이 오른 전세버스가 늘 그렇듯 내부는 와글와글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가이드가 전할 말이 있는지 맨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자자, 지방방송 꺼주시고요~”라며 말을 시작했다. 순간 버스 안 공기가 어색해졌다. 본인이 담당하는 단체 관광객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잊은 듯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임원이 공개적으로 발언을 문제 삼았다. “우리가 지방방송 직원들인데 그렇게 폄하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점잖지만 강한 어조의 지적이었다. 가이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이드는 별다른 악의 없이 습관적으로 한 말일 테지만 나 또한 불쾌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살면서 그 표현을 처음 들은 건 아닐 거다. 그런데도 지방방송 꺼라는 말에 차별과 비하가 녹아있다는 걸 그제야 처음 자각했다. 서울에서 쭉 살았더라면 인식하지 못하고 넘겼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방방송 꺼라는 표현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비유는 인식을 담아내는 말그릇이다. 지역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지방방송을 잡담 취급하는 표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기저에는 지방은 열등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어디 이런 표현이 한둘일까. 고백하건데 세련되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촌스럽다는 표현은 지금껏 내 입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발화와 동시에 도시 혹은 서울 중심주의에 찌든 나 자신을 알아차리며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부단히 사상을 정비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비수도권 거주민이 된 후부터 시민에게도 계급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방 사람들은 2등 시민이다. 2등 시민의 목소리는 아주 손쉽게 삭제된다. 전국 사업장 폐기물의 18%를 청주에서 소각해, 인근 동네 사람들이 집단으로 죽거나 병에 걸려도 정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지역방송 기자가 끈질기게 기사를 써도 서울 본사의 보도 결정권자들은 전국권 뉴스에 반영하지 않는다. 이 비극이 서울에서 벌어졌다면, 단언컨대 각 방송사 전국뉴스의 톱을 차지했을 것이다. 서울의 언론에게 지역은 자극적인 사건사고의 발생지이거나 부동산 투기의 무대로만 존재한다. ‘중앙언론혹은 전국언론을 표방하지만 실은 서울만을 위한 언론임이 틀림없다. 수신료나 구독료는 서울사람이나 지방사람이나 똑같이 받아가면서 말이다.

 

흩어져 저 멀리 사라지는 연기 같은 목소리들을 듣는다. 최초에는 힘차게 뿜어져 나오지만 머지않아 눈앞에서 없어지고야 마는 허무한 연기. 끝내 그곳에서 무언가 뿜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 챌 수 없게 되는 연기. 이곳 사람들의 목소리는 연기와 같다. 그래서 지방방송의 볼륨은 더욱 커져야 한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쩌렁쩌렁한 외침이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소중한 것들이 연기처럼 다 사라져버릴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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