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페미니스트 모임 ‘펠프 미’9월의 책
<전쟁 같은 맛 - 그레이스 M. 조>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이재헌
오랜만에 엄마가 반찬을 한 상자 보내주셨다. 작은 아이스박스 안에는 10여 종에 가까운 반찬과 과일, 참기름이 꽉꽉 눌린 채 담겨져 있었다. “전쟁 같은 맛”을 읽고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의 요리를 하고 포장을 하는 마음을 헤아려 봤다. 누군가에게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 학교에 가져갈 아이 도시락을 싸던 누군가에게는 내가 자식을 얼마나 관심 갖고 정성껏 돌보는 지 드러내는 마음, 타국에서 자녀들에게 모국 요리를 해주던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을 기억하고 아픔을 달래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그레이스 조의 엄마는 사회적 약자였지만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타국 들판과 산에서 채집을 하고 끔찍한 일터에서 새벽마다 일을 하며 들풀처럼 그 자리에서 버텨내고 시들어 갔다. 저자는 그렇게 강인한 엄마가 갑자기 조현병이 생기고 아파야 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삶을 추적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전쟁피해자, 기지촌 여성, 이민 여성, 그리고 조현병 환자 여성의 일생 전체를 좀 더 다각적이고 사회적 맥락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가나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희생됐던 개개인의 이야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지난 백 년의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단지 이데올로기적인 추종뿐일 수도 있겠지만 “전쟁 같은 맛”을 통해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길 희망해 본다.
이 책을 덮고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저자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마음이 내게도 묻어버렸나 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먹여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은규
이 책 ‘전쟁 같은 맛’에는 한국전쟁 후 미군 기지촌 설립과 운영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기지촌 여성들을 성노예로 부당하게 취급해온 사실들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기지촌 여성들의 인터뷰도 함께 싣고 있다. 필리핀 성 노동자 활동가는 “매춘부가 되지 않기로 할 권리”를 확보하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방임과 방치를 넘어 포주가 되는 국가에 대한 요구이다. 저자인 그레이스 M 조는 이 책을 쓰고나서 많은 사람에게 ‘이런 글을 쓰다니 무척 용기 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용기가 아니라 충동에서 나온 글쓰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의 맨 앞장에 이렇게 글을 썼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를 먹여준 모든 어머니께, 그리고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사람 없었던 모든 이에게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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