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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책 숨 , 슬기로운 탐독생활

눈부시게 불완전한 - 일라이 클레어

by 인권연대 숨 2023. 10. 25.
남성 페미니스트 모임 ‘펠프 미’10월의 책

 

모든 딱딱한 제약들이 해체되는 시상을 위해, 한 걸음 - 나순 결

 

무시무종 작가는 치유를 공격혔다. 이 책에서 치유는 의료산업복합체-이하 의산복체-가 장애인에게 규정지은 치유. 의산복체가 말허는 그 치유’, 의산복체에 기생허는 써브-경제체가 말허는 그 치유’, 의산복체 도움으루 정치력을 휘두르는 정당과 그들이 획득헌 권력이 법과 조례로써 의산복체으 영생을 굳건허게 혀주는 그 치유’.

일라이 클레어는 역시나 끝꺼정 나아갔다. 치유가 교도산업복합체루 가면 교화가 됨을 그 치유가 군수산업복합체루 가면 평화가 됨을 그 치유가 지속가능산업복합체루 가면 탄소중립이 된다는 걸.

 

기울어진 치유치유루 바루 세우자구 목이 터지도록 외친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온통 감동이었다는 감사를, 온통 놀라움 반 분노 반이었다는 헌사를 보낸다. 쳅터 12개가 모다 완벽허게 눈부시다’. 긴 시간에 걸쳐서 쳅터 한나한나 읽구 토론허구 쓰구혀야 헌다. 정 그럴 시간이 없다면 캐리 벅 I~III(쳅터 5~7) 정독만이라두.

자본주의, 종차별주의, 장애인 혐오, 비이성애 혐오, 비장애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백인우월주의, 인종주의, 이성애·시스젠더중심주의가 없는 시상에서 내는 살구 있다. 허지만 내 주위는 그렇지 몬허다. 시설에 갇혀 감금상태가 지속되구 있는 장애인들, 멀리 사라토프 주민들 멀리 가자지구 주민들 그 옆 서안지구 동무들은 오늘 하루를 지금 이 시각을 한쪽에서 지루함에 무기력허게 한쪽에서 목숨이 원제 날아갈지 모르는 두려움에 공포에 휩싸여 옴짝달싹 몬허구 있다.

 

움직일 수 있는 내가, 접근혀서 손 내밀어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움직여야 함이 마땅. 내 한걸음으루 ‘~가 없는 시상이 단 일초라두 빠르게 내 주위에서 顯現헌다는 믿음으루 완전무장헌 채루다가.

 

 

“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 이은규

일라이 클레어는 장애 있는 생명들, ‘-마음을 단순하게 정의했다. “눈부시게 불완전한 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채로, 모든 게 이토록 복잡하고 단순할 수 있을까?”라고.

 

비장애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백인 남성중심주의 등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면 일라이 클레어의 통찰에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눈부시지만 불완전한 몸-마음들은 제 눈에 낀 비늘을 벗겨 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외려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으스대고 추앙하고 있는 세상이다. 장애인과 유색인, 낯선 타자를 비인간화하며 혐오와 차별 그리고 격리와 멸종의 넘쳐나는 사례들을 이 책에서 접할 수 있다.

장애인에게 치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의료 행위는 세계를 비장애 중심주의와 의료산업 복합체의 이윤 추구의 시장으로 만들어 왔다고 비판한다. 비장애 동일성에 대한 강박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자선단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자선단체들은 장애는 비극적인 것이고 장애인은 불쌍하다는 관념을 형성해왔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해왔다고 비판한다. 정작 장애인들에게는 최저임금도 채 주지 않는 일자리를 주면서 말이다.

 

장애는 마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 없는 계단에, 시각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자와 오디오북의 부재에, 난독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육방식에 있었다.”

 

일라이 클레어는 불가능한 꿈을 상상한다. 그래서 그는 리얼리스트이다.

만일 비만 혐오, 비장애 중심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계급 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 외국인 혐오가, 다양한 몸-마음 위에 위치하는 모든 딱딱한 제약들이 해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욕망할까? 이 질문은 나를 압도한다. 불가능한 종류의 상상을 요구한다.

괴롭힘, 빤히 쳐다보는 시선, 끝없이 이어지는 노골적인 질문들 또 없을 것이다. 극복의 미덕을 홍보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재단과, 기금 모금을 위해 연민과 비극을 활용하는 근육병협회도 없을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도, 기업식 농업의 옥수수밭도, 마실 수 없는 물과 숨 쉴 수 없는 공기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몸-마음의 차이가 존중받고 그 중 어느 것도 박멸되지 않는 세계를 스치듯 본다. 평안과 고통, 안녕, 탄생, 죽음이 모두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치유는 우리에게 실로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결코 정의를 주지는 않으리라. 이 다시 설정된 세계에서, 치유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대도 많은 도구들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우리 몸-마음의 욕망은, 한 여름의 톨그래스 대초원처럼 활기차고 다채로이 우리 사이로 퍼져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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