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
잔디
어젯밤, 의자에 반쯤 걸쳐 앉아 허리를 좀 쭉 펴고, 발바닥을 방바닥에 대고 나무가 되는 상상을 하며 한 시간쯤 미술치료 작업을 했다. 줌을 통해 마주한 치료사의 안내에 따라 나무줄기에 적어보고,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나 자신에게 들려주며 울컥하는 감동의 순간을 맞았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만나고 나도 가까이에서 몸으로 이분을 한 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미 글로 만났지만. 그분이 스물 한 명의 다른 미술치료사분들과 연대하여 준비한 닷새간의 무료 여정. 오픈채팅방에 닷새 동안의 준비물과 안내가 공지되었고, 친구들에게도 공유하였고, 참여하였다. 제주에 살고 있는, 떨지 않는 목소리의 그는 벅차 보였고, 몹시 떨린다고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그저 나누면서도 참여해 주어 고맙다고 정말 고마운 소리로 기운을 전해 와서 그때부터 나는 울컥하였다. 아직 만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로 향한 인류애. 아름다웠다. 반짝이는 미소의 오늘의 주치료사 선생님을 안내한 후, 그는 참여자로 돌아갔다.
나는 옅은 베이지색의 A4 종이 한 장과 마른 낙엽 몇 장, 색연필을 준비하여 앉아있었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받는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고요한 음악을 잠깐 듣고, 발바닥을 바닥에 대고, 몸을 곧게 펴고, 입가에는 약간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반쯤 뜨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바라보며 숨이 들어가는구나, 숨이 나가는구나 숨을 바라보며 내가 ‘나무’라고 상상해 보았다. 나는 어떤 나무인지, 오늘 작업을 통해 어떤 것을 보내고, 어떤 것을 맞이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종이에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안내에 따라 나무기둥과 나뭇가지를 그렸다. 그리고 나무 기둥에 나에게 친절한 말, 내가 듣기에 긍정적인 말, 나에 대한 칭찬, 좋은 말, 나의 강점을 용기 내어 적었다. 얼굴이 조금 뜨거웠지만, 적다 보니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그리고 낙엽에 나의 실망스러운 점, 단점, 버리고 싶은 마음을 적었다. 적기 시작할 때 얼굴이 확 뜨거워졌고 뭔가 혼자 작업하면서도 창피한 마음이 스멀거렸다.
선생님이 적기 전에 심장박동수를 확인하고 적기 시작하라고 안내하였는데 작은 낙엽에 완벽하고 싶은 마음, “더 잘할 수 있잖아”하며 나를 떠미는 마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불안함, 어떤 순간 말하지 못하고 얼어붙어버리는 굳은 마음, 그런 것을 막 적으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다가 다섯 장째 적었을 때부터 좀 덤덤하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적고 있다는 걸 보았다. 선생님이 긍정이 더 적기 쉬웠는가? 부정이 더 쉬었는가를 생각해 보자고 하였고, 나는 긍정도 용기 내어 부정도 용기 내어 쓴 나를 보았다. 그런 후 나무기둥에 써 놓았던 말을 소리 내어 자신에게 들려주자고 하는 안내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눈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고... 읽으면서 벅차 올랐고, 눈물이 났고, 명치 부분이 뜨거워지면서 열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낙엽에 쓴 문장들과 이별하는 시간. 그동안 나를 이끌어주고 지켜주었던 허나 나를 무척 아프게 하기도 했던 그 생각, 그 마음을 정성스레 찢거나 부수는 시간. 낙엽이 잘 말랐다면 움켜쥐었을 때 바사삭하고 부서지는 재미가 있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찢거나 부수거나 가위로 자른 조각들을 봉투에 담고, 안녕, 잘가, 그동안 고마웠다, 라고 인사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나는 낙엽조각들을 흰 종이에 모아 흰 종이를 둘둘 말고, 안녕 잘 가, 고마워,라고 겉에 써넣었다. 이때도 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버려도 될까? 나의 아픈 시간들. 그래서 당분간 갖고 있다가 태우고 싶다. 여기까지 활동하고서는 나뭇가지에 초록잎을 잔뜩 그려넣었다. 초록잎을 자꾸 자꾸 그려넣으면서 내가 생명력 있는 나무로 자라나는 것을 상상했다. 한동안 초록잎을 그리고 나서, 다시 처음처럼 앉았다. 그동안 듣고 싶었던 말들이 선생님의 기운을 통해 소리로 들렸다. 그 기운만 남고, 선생님의 말들은 시간과 함께 지나갔지만, 나의 몸속에서는 어젯밤의 충만하고도 위로받은, 사랑받은, 연결된 기운이 흐르고 있다. 지금 생각나는 문장은, 나는 생명력을 품은 나무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 내 발바닥이 뿌리가 되어 한 곳에 뿌리내린 단단함으로 생명을 키울 수 있다는 것. 내 머리위로 초록 이파리들이 반짝이며 자라나고 있다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지금 책상 위에 언젠가 태울, 지나간 혹은 지나갔다가도 여전히 나의 생각 속에 남아있어 기운 빠지는 그 마음들이 흰 종이에 싸여있다. 그걸 펴본다. 만져본다. 어젯밤보다 마른 낙엽 조각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손을 접었다 폈다 해본다. 쉽게 바스라지는 마음들을 무겁게 잡고 아프게 살아온 나를 위로한다. 그렇게라도 살아내려고 살아보려고 애썼던 순간들에 반짝이는 초록가루를 뿌려준다. 최선을 살아내려고 바닥까지 다 드러난 마음을, 에너지를 더 떠내려고 했던 그래서, 아파고 또 아팠던 마음들을 덮어준다.
살면서 그 아픔이 다른 아픔을 만들려고 할 때 보살펴주어야지. “어떻게 아픔을 아는 네가 그렇게 하려고 해?”라고 따지기보다 그냥 안아주어야지. 우리집 마당에서 며칠째 왔다 갔다하며 재채기하는 엄마 잃은 아기고양이를 보드라운 옷으로 감싸고, 따스하게 쓰다듬듯 나를 쓰다듬어주어야지.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나는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 안다고 말해주어야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또 말해주어야지. 또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알고 있다고 소리로 들려주어야지. 자꾸 들려주어야지. 더 많이, 자꾸 자꾸 말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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