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뒷집 할머니
잔디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 집 마루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쳐다본다. 요양보호사 선생님 차가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지나가는지 지나가지 않는지를 본다. 어~ 오늘은 일곱 시 오십 칠 분에 오셨네. 일찍 오셨구나. 선생님을 하니는 짖지 않고 반기는구나. 내가 할머니한테 가려고 우리 집을 나서기만 해도 짖는 녀석이. 스읍!
열한 시에는 빨래를 널고 요양선생님은 하얀 차를 끌고 가시는구나. 할머니 마당을 쳐다만 보지 말고 할머니께 오랜만에 가볼까? 이따가 가볼까? 이런 저런 마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오후엔 그냥 아무 마음 없이 햇살을 등지고 달래를 캔다. 우리 식구 먹을 거랑 할머니 거랑 캐야지. 한참 캐다보니 누군가 나를 부른다. 거기 있는 거 캐면 어떡 하냐고. 돌아보니 할머니가 달래를 캐지 말라시는 거다. 무슨 일이지 싶어서, 그때까지 캔 달래 한 줌을 들고 할머니께 다가간다. 할머니가 싹이 난 쪼글쪼글한 감자를 심으시려는지 손을 떨며 반씩 나누고 계셨다. 다른 사람인 줄 알고 밑에 애기엄마 먹어야하는데 다른 사람이 다 캐 가면 안되니까 소리를 했는데 잘 보니까 애기엄마라며, 다리에 힘이 없어 달래 캐도 못하는데 캐줘서 장 끓여먹으면 되겠네 하신다. 감자를 반씩 자르는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가 뭐라 그러시나 듣는다. 공기 속으로 곧 흩어질 기억되지 못할 말들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바쁜 애기엄마 붙잡고 괜한 소리한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면서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어져서 햇살이 산을 넘어가려고 할 때까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감자를 다 가르고 감자가 담겨있던 상자도 할머니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 불 때는 집이니 가져가서 불쏘시개로 쓰라고 하셔서 마당 한 켠에 던져놓고 할머니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감자가 싹 담은 상자의 감자 싹을 두엄에 던져놓고 가른 감자는 보일러실에 넣어놓고, 우린 마루로 엉덩이를 옮기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열심히 농사지어 칠남매 키우신 이야기,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던 깜깜했던 당신의 이야기, 죽어지지도 않아서 구십 넘게 살고도 내일모레면 백 살을 바라보는 지금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 한탄스러우면서도 그래도 살아있으니 살기는 해야 해서 자식들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어머니 신간만 잘 보살피시라고 누누이 말해서 늙은이가 저렇게 나와 앉아 뭘 하냐며 누가 볼까 무섭지만 감자 싹이 상자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신다. 주말에 칠 남매 중 누군가가 와서 큰아들 부부가 지난 주말 굴뚝 옆에 씌워놓은 자그마한 밭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에 구멍을 뚫어 감자 조각을 흙 속에 넣어주기를 바라는 순한 마음을 들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누워 계실 때 자녀분들이 정리한 옷가지며, 가방이며 쓸 만한 걸 왜 다 버렸는지를 이야기하시다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 일어나시더니 할머니의 광으로 들어가신다. 할머니의 마루에서 보이는 우리 집, 밤에 추울까봐 할머니가 깔아주셨을 옷을 물어뜯는 하니, 하니가 물어뜯은 옷에서 날아오르는 오리털, 서서히 기온이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다시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신다. 받아서 딱 한 번 쓰고 걸어놓았던 어느 국회의원이 선물로 주었다는‘가방’과 오렌지 음료 두 개, 보건소에서 준 손바닥만 한 에코백과 지팡이 한 개를 툭 던져주신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가방에 대해 십 분은 이야기하신 것 같다. 나와는 정치색이 다른 당의 국회의원과 그럴 걸 주고받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라고도, 저는 그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없다고도 하지 않고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가벼웠다. 지팡이 역시 지금의 나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 읽으셨는지 밤에 혹은 밭에 갈 때 땅을 이렇게 두드리거나 휘저어서 미서운(무서운) 걸 쫓는데 쓰라고 주시는 거라고 가방 이야기에 이어서 해 주신다. 할머니의 의도를 말하는 이 부분이 나에게는 썩 마음에 들었다.
나도 할머니를 닮아야지. 가방과 오렌지 음료와 하니에게 당신의 옷을 깔아주시는 할머니 마음, 지팡이와 에코백, 불쏘시개용 상자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밥을 하면서도 오늘 저녁엔 할머니가 불을 환하게 켜고 계시는구나. 이제 텔레비전만 켜고 누우셨나 보다. 열 한 시인데 아직 안주무시네,..
할머니 방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의 수많은 이야기들 끝엔 언제나 다른 사람을 향한 시선들을 줄세우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보내시는 빛을 보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나. 이야기를 줄줄 쓰는 나를 바라본다.
때론 수많은 말로, 때론 소리 없는 시선으로만. 그것은 작은 변화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방향의 전환. 순탄한 순간이 있었겠지만 순탄하지 않은 순간에도 호미질을 하며 순탄을 바라는 한숨을 쉬었을 혹은 미소를 지었을 할머니. 희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밭에서 자라나는 풀을 뽑으며 희망을 키웠던 할머니. 그는 밭에서도 집에서도 생명을 키웠던 사람. 이제 오롯이 자신의 생명을 바라보는 시절을 맞이한 사람. 그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나의 이야기를 듣는 나를 본다. 가끔 다른 생각을 같은 언어로 내뱉기도 하는 관계를 할머니와 맺기 시작한 나는 오랫동안 그리웠던 장소에 이제 막 도착한 지도 모르겠다. 이곳이 그저 지나쳐갈 곳이라 하더라도 조금 오래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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