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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작!

by 인권연대 숨 2024. 4. 25.
시~~~~작!

잔디

 

기다렸다는 듯이 연두를 한꺼번에 튀겨내던 나뭇가지들은 어느새 연두를 키워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매일 매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을, 만날 만날 꽃을 피워내는 꽃마리를, 아직 어린 연두를 키우는 감나무 가지 끝을 바라보는 일은 즐거움이다. 명치 끝에서 혹은 배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무엇인가가 생겨나 몸 전체를 가벼움과 자유로움으로 채워주는 순간을 맞이하는 기쁨이다. 여기가 대추밭이야? 제비꽃밭이야? 감탄케 하던 밭에서 이제 제비꽃도 대추나무싹도 같이 자란다. 대추나무 몸에서 연두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봄이 할 일을 다했다고 해석한다. (물론 봄이 여기에 더 오래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란다.)

요사이 초록과 파란 하늘의 경계가 한결 더 아름답다. 서로 어우러져 피어나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서로 배경이거나 전경이거나 하지도 않고, 오롯이 그저 그 상태에 있는, 존재다 존재가 아니다 하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상태의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를 바라보고 너를 바라보는 일이기를 자주 바라게 된다.

 

회사에서 봄을 맞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만남을 다시 시작하였다. 제목은 부모교육이다. 프로그램 소개를 어느 밴드에 띄우고 기다렸는데 두 분만 신청하셨다고 담당자분이 이야기를 하여서, 함께 하고 싶은 부모님들 한 분 한 분께 전화 드려 취지와 내용, 방식을 설명하였고, 함께 하시겠다 신청해 주셔서 시작할 수 있었다(감사 또 감사). 공부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곽티슈까지도 준비하여서 간 자리, 도서관 세미나실을 대여해 준 담당자분 덕분에 같은 사람 다른 느낌과 분위기 속에서 여러분들과의 첫 만남을 하였다. 매번 아이와 수업이 끝난 후에 잠깐씩 서서 대화를 하던 우리는 아이 없이 사뭇 조용하고 새로운 곳에서 서로를 만나 더 반가웠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는 사람도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져 있는 우리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서로를 보이지 않는 팔로 포옹하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흘렀다. 내면의 어떤 것을 말로써 공유하는 것도, 내면을 밖으로 꺼내어 말하기가 오늘은 어려워 패쓰하는 순간에도 자유로왔다. 우리는 이 교육을 선택한 나의 기대, 요즘 즐거움으로 자기소개를 짝꿍에게 하고, 그 짝꿍이 나의 소개를 들은 대로 말해주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을 때의 나의 느낌을 말했다. 내 양육의 목적에 대해서는 느낌 목록과 욕구 목록에 있는 단어로 선택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육이 얼마나 힘든지, 또 양육이 행복한 순간을 얼마나 나에게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였다. 그러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양육하는 이야기로 건너갔다.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를 어떻게 기르고 싶은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채워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하다 또 울었다. 그리고 아주 편안한 존재와 잠들 때처럼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그래서 매일 밤 9시 즈음 오늘을 산 나에게 감사한 순간을 기록하여 서로 공유한다. 때론 아침에 오늘을 살아갈 나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한걸음에 달려와 폭 안아주고, 안겨 주어서 고마워.”, “가족을 위해서만 살다가 나를 위하는 시간을 보내는 요즘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나를 재양육하고 있었구나. 나를 배려해주어 고마워, 나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에 따뜻함이 있어요. 위로와 위안의 에너지 고맙습니다.”, “아이와 양손 잡고 봄바람 맞으며 걷는 순간, 함께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해.”, “밥하기 힘들었는데 맛있는 치킨 배달 식사로 배려해주어 고마워.”, “부추 모종과 파 모종 심고 물주는 과정 즐겁게 즐겨 주어 고마워.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 부추밭을 꿈꾸는 너, 멋져.” 회전목마처럼, 살림처럼 무겁게 반복되는 일상 중에서 이런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축하하면서 삶이 무겁지만은 않고, 순간의 기쁨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그 기억을 떠올려 다시 기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공유하며 축하한다. 그래서 함께 가벼워지고 함께 홀가분함에 이른다. 한순간도 끊어짐 없이 연결되어 있었던 사랑을 느낀다. 그 새로운 사랑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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