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일.
잔디
한낮은 뜨겁고, 밤은 서늘하다. 꽃피는 한낮은 찬란하고, 꽃 지는 밤은 아름답다. 한낮의 오이 넝쿨 잎은 열매 오이에게 그늘을 선사하며 축 늘어져 있고, 한밤의 오이 잎은 달의 기운을 받아 축 늘어져 있던 잎을 일으켜 반듯하게 자신을 펴서 스스로를 지킨다. 밤 동안에도 열매를 키운다. 달빛을 벗 삼아, 별빛을 위로 삼아 밤을 지새우며... 하지가 가깝다.
화요일 밤 9시의《분노, 죄책감, 수치심》책 읽기 열 두 번의 만남이 끝났다. 가을에 새로운 책 읽기를 약속하며 휴식에 들었다. 리브 라르손 선생님이 쓴《분노, 죄책감, 수치심》을 이경아 선생님이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선생님의 말) 번역한 것을 이경아 선생님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로 책읽기 모임을 시작하였다고 말하였다. 멋지다.
지난한 번역 작업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을 가지고, 모르는 타인들에게 선뜻 함께 읽자고 손 내밀어 준 역자 덕분에, 읽기 어려워서 손대지 못하고 책꽂이에 내내 꽂혀 있던 책이 가방 속에 담겨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햇빛 받고 때론 색연필로 줄무늬 옷도 갈아입으며 참고문헌 페이지까지에도 손때를 묻혔다. 내용이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읽을지라도 읽기를 계속하다 보면 낭독하는 소리를 몸이 같이 듣게 될 것이고, 묵독이 주는 깊이와는 다른 독서를 하게 되면서 내용도 한층 깊이있게 이해될 것이라고도 선생님이 말하였는데, 마지막 모임에서 누군가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였고, 정말 그런 것 같다고도 말하였다. 나 역시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선생님들 덕분에 화요일을 기다리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분노, 죄책감, 수치심》책을 돌아가면서 읽기 시작한 첫 날, 음소거를 해제하지 않고 몇 마디 읽다가 “잔디, 음소거 해제하고 읽어주겠어요?”라고 들은 것이 수치스러웠고, 그게 뭐라고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체하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내 차례가 되어 읽는 한 페이지 어디쯤에서 멈추어야 하는지를 망설이다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한 줄 더 읽은 것이 눈치 보였고,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내 목소리가 워낙 작아 상대들에게 권력을 이미 주어버리는 꼴이 되고마는 순간들이 떠올라 눈앞이 아찔했다.
첫 회기 끝나고 새로운 이어폰을 구입하려고 온라인 몰에서 한 시간 넘게 찾아보다가 눈이 시려 눈물이 났다. 결국 새로운 이어폰을 구입하였으나, 그 역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또 들어서 내 차례가 될 때마다 수치스러워지지 않으려고 이어폰 마이크에 입술을 아주 가까이 대고 소리 내어 읽었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명확한 목소리를 잘 내려고 노력했다.
읽기 중반에 접어들었을 무렵에는 지금 현재의 나의 수치심은 마주한 화면 안에서누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 내가 화면 안의 누군가에게 일부러 수치심을 주려고는 하지 않는 것과 같이 - 과거의 경험들에서 만들어진 상처와 기억이 현재의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이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안겨 주는 무겁고 괴로운 짐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치심, 죄책감, 분노가 느껴질 때,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슈는 나의 존엄을 잘 유지하거나 보호하는 것(존엄), 그 어떤 것 순간에도 사랑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소속),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수용하는 것(수용),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들어주는 것(보여지고 들려지는 것 포함)이었다. 수치심으로 얼굴과 마음이 벌겋게 뜨거워지는 그 순간, 그 이슈들이 다른 생각이나 마음보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살면서 수치스러운 순간 나를 숨기고, 상대를 탓하고, 혹은 반항하고 때론 후퇴하기만 했던 나를 가만히 좀 친절한 눈으로 바라보아 주었다. 그러니, 나를 들을 수 있었고, 수많은 순간 나에게서 뒤돌아 서 있던 나를 용서하거나 그런 나에게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어떤 말로 인해 수치스러운 순간,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이 나에게 준 문장 말고, 그 사람이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말하고자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얼굴에 가득 찬 붉은 기운이 발바닥으로 쑥 내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그 순간 수치스러운 그 순간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지점에는 서 있지 못하지만, 숨거나 숨기거나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느끼는 자유에 감사한다. 그래서 수치심과 친구 되기. 오늘이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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