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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산 위에서 부는 바람

아침마다 엄마는

by 인권연대 숨 2024. 8. 26.
아침마다 엄마는
잔디

 

# , , , , 금요일 아침마다 동시집 읽기 대화방에 그날의 시제가 게시된다. 동시집 읽기 강좌를 시작하는 첫 날, 강사님은 수강생 한 명 한 명에게 네 가지의 단어를 제시해 달라고 부탁하였고, 수강생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재미있는 듯 각각 네 가지 단어를 말하였다. 강사님은 곧 단어를 쪽지 한 장에 하나하나 써서 단어주머니를 만들었고, 아침마다 단어주머니에서 단어 하나를 뽑아 그날의 시제로 선물한다. 아침에 시제를 받으면, 그날 밤 9시까지 어떻게든 글 하나를 완성하여(주로 동시 형식) 다시 단체 대화방에 게시한다. 이름 하여 “9”. 이 강의를 듣고자 선택할 때 9글이 뭘까? 궁금했던 우리는 강사님이 9글을 설명했을 때, 좌절하기도 희망하기도 했다. 날마다 시 한 편을 어떻게 써내냐, 강의 듣는 두 달 동안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일 것 같다, 이런 강의인 줄 몰랐다, 등등의 반응이었으나, 수강생들은 날마다 엄마 닭이 알을 낳듯 어떻게든 시라는 걸 낳고 있다. 가끔 10글을 하거나 11글을 하거나 01글을 하기도 하지만, 당황스러운 새로운 제안 앞에서 밥상을 차려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듯 월, , , , 금요일 동안 매일 다른 반찬을 만들어 먹고 있다.

 

# 매일 새로운 시를 짓는다는 건 작가의 삶, 시인의 삶을 꿈꾸고 한 발짝씩 그 길을 걸어보려 어떤 날에는 희망하기만 하는 나이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아침엔 시제를 받자마자 3분 안에 써놓고 별다른 퇴고도 없이 제출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엔 하루 종일 고민만 하고 별다른 글이 나오지 않아 시제가 얼음 공기였던 어제는 놀이는 계속되어야 해라는 제목으로 얼음, !/ 민재야, 이제 공기놀이 하자!” 이렇게 두 문장짜리 글을 하루 종일 서성이다 9시에 제출했다. 제출할 때까지 , 이렇게 제출해도 되는 걸까? 차라리 제출하지 않는 게 낫겠어.”, “그냥 제출해.”, 이런저런 생각들과 줄다리기를 한참 했었다.

 

# 그리고 퇴고를 몸으로 느꼈다.

오늘 점심 때

태어나서 43년 동안 말하지 않고

살아온 언니랑 마주 앉아 급식을 먹었어

언니랑 손잡고 다니는 옆에 앉은 언니가 말해 주었어

 

43년 동안 말하지 못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언니에게 엄마가 있다면

언니는 엄마한테 "엄마"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언니의 어머니는 언니한테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까?

 

말하고 싶을 것 같아

듣고 싶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한 알 한 알 밥만 먹었어

언니와 그 언니는

벌써 급식을 다 먹고 물을 마시고 있었어

나는 복지관 3층으로

일하러 올라가는 두 언니의 뒷모습을

그냥 보기만 했어

우린 내일도 마주 앉아 밥을 먹겠지

등지고 앉아 밥을 수도 있겠지

만나지 못하면 따로따로 밥을 먹을 수도 있겠지 운이 좋으면 또 마주 앉겠지

 

나는 언니를 가끔 떠올릴 것 같아

말하지 못한다는 건 어떤 걸까? 묻기도 하면서

소리 내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하기도 하면서

 

이랬던 이 글을 아래처럼 퇴고해 보았다.

 

오늘 엄마가 점심 때

태어나서 30년 동안 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이모랑 처음 만나 밥을 먹었대

 

30년 동안 말하지 못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모가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이모가 듣고 싶었던 말은 뭘까?

만약 내가 이모라면?

생각하면서 밥을 먹었어

 

그냥 서로 보기만 하며

밥 먹는 두 사람

 

엄마는

이모를 가끔 생각할 것 같아라고 말했어

나도 가끔

이모를 떠올릴 것 같아

 

그리고

말한다는 것에 대해

 

이글을 옮겨 적는 지금 말한다는 것에 대해, 침묵에 대해, 공명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등단하기를 희망하면서 신춘에도 그 어느 잡지에도 원고를 제출하지 않고, 희망하기만 했던 나를 생각해 본다.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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