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606 <114호> 친구의 이혼_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 계희수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여덟 명 정도가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던 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밤을 새도 모자랄 만큼이다. 그 중 둘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오랜만에 딸을 키우는 A의 집에 모였는데 아기만 있고 남편은 없었다. A의 남편도 우리와 곧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터라 안부가 궁금했다. 남편은 어디 갔냐고 빨래를 널고 있는 A에게 물었더니 친구가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묘한 분위기가 감지돼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밥을 먹고 3살짜리 딸아이와 한창 놀아주던 우리에게 A가 말했다. “나 오빠랑 이혼할 거 같아. 별거한지 두 달 됐어.” 우리는 크게 놀랐지만, 마치 짠 것 마냥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별 문제 없어 보였던 친구의 겉과 달리,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2021. 10. 26. <113호> 미진 일꾼의 시방 여기 짧은 글 미진 일꾼의 시방 여기 짧은 글 낮이 짧아지고 밤은 길어집니다. 제법 밝았던 시간이 어두워지는 것에 다시 적응하다 보면 마음속 무서움이 올라옵니다. 무서움은 시끄러워서 한번 나타나면 잠자고 있던 다른 무서움도 흔들어 깨웁니다. 저는 요즘 이런 게 무섭습니다. 불평등한 현실보다는 불평등에 무뎌지는 것, 외로움보다는 외로움에 무뎌지는 것, 어두운 미래가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것. 여러분은 요즘 어떤 걸 무서워하시나요? 2021. 9. 30. <113호> 어머니와 잔디_잔디(允) 절벽에서 어깨에 시멘트를 혹은 널빤지를 메고, 널빤지 위를 한 발 한 발 걷는 잔도공을 본다. 중국의 아름다운 절경에 위험하지만,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사람들. 땅 위에서 1400km 위의 지점에 그들의 직장이 있다. 하늘이 주신 직장이라 고맙다 말하며, 발아래에는 바로 낭떠러지인 그 좁은 길을 하루에도 수십 차례 발 디딜 곳을 발바닥으로 짚어가며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러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의 어머니. 학교 가려면 가방 찾아 헤매다 결국은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던 그 사람. 가방을 숨겨둔 사람은 그의 어머니. 첫 출산 때, 동네 산파 역할을 하던 어머니를 믿고 있다가, 숨어버린 어머니를 기다리다, 급히 택시를 불러 조산원으로 가서 출산했던 그 사람. 앓는 어머니.. 2021. 9. 30. 이전 1 ··· 92 93 94 95 96 97 98 ··· 20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