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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제76호> 산티아고 길을 걷다(2)_김승효(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5.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베이징을 거친 우리는 약 17시간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어느 시골 마을에 뚝 떨어진 듯 내린 공항은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초원 위였다. 깨끗했던 가방은 몇 날 며칠을 흙바닥에서 구른 듯 더러움이 여기저기 징표처럼 묻혀 내게 스페인여행의 첫 시작을 알려주었다.

 

떠날 때부터 산티아고 길을 걷기 전, 바르셀로나에서 사나흘 정도 묵기로 계획했었다. 계획한 대로 카탈루냐광장을 누볐고, 온종일 가우디의 발자취를 좇기도 했다. 세계 3대 성스러운 검은 성모상이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에 올라 바실리카 대성당 제단 뒤편 2층에 자리 잡은 검은 성모상을 안아보기도 했다. 비가 내리면 그것대로 멋스러운 도시에 생전 피카소가 머물렀던 집이 지금은 그의 습작부터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변모하여 있었다. 한국에서는 별스러울지 모를 전시회를 그들은 일상으로 누리고 있었고 그를 부러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호사도 누렸다. 촘촘하게 하지만 급하지 않게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현재와 과거의 바르셀로나를 만나는 일은 나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흘 동안의 황홀한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길을 걷기 위해 우리의 출발지인 팜플로나로 향했다. 비가 오는 팜플로나는 우리나라의 초봄 날씨 정도로 싸늘했다.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까미노 여권을 발급받고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거는 경건한 의식(?)과 함께 대장정에 올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생경했고 모든 것들이 내 평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으니 매 순간 긴장했다. 그래도 함께하는 이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이번 여정에 스스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을 마음속으로 정했었다. 살면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 길 위에서만큼은 가능하리라 스스로 믿기로 했다. 그러면서 힘들게 이 길을 걷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불가에서 내 이름은 尋牛者(심우자). 나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 되는 법명이다. 어쩌면 이 길이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나에게 붙여준 이름을 모두 떼어내고 본래 나는 누구인지를 끝없이 스스로 되물어야 하는...걸으면서 온전히 그 생각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첫째 날, 26km를 빗길에 걸었다. 발에 물집이 잡혔고, 도착지의 알베르게는 지금 생각하니 손에 꼽을 정도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작은 방에 다닥다닥 붙은 2층 침대가 6!! 더군다나 도착순서대로 침대를 정해주니 남녀혼숙은 당연지사다.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최악이 무엇이었을까 싶었다. 그 후로도 매일 20km 내외로 걸으면서 발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물집이 가라앉기 전에 걸으니 다시 물집이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아무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발이 망가지는 육신의 아픔이 꼬박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발이 망가지고 있음에도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상스러운 기준에 객기를 부린 결과였다. 이 얼마나 오만한 행동인가! 망가져서 도저히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항복하게 되는 나를 보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 했다. 항상 스스로 자신하여 오만에 빠지면 가차 없이 깨져나간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아픈 발을 끌고 걷다가 도저히 더는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고집을 꺾고 버스를 탔었다. 도착지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했고, 주인 할머니가 비 맞은 우리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실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함께 간 동생에게 미안했고 다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객기를 부린 나 자신이 너무 싫고 화가 났다. 그런데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의 어른이 건네주신 수건이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어 감정이 복받쳤던 것 같다. 상처를 살살 달래고 낫게 한 후에 움직이기로 하고 하루를 더 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발의 상처도, 부산한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발과 시름 하느라, 멀리 있는 가족 걱정에 여전히 집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을 떼어 내느라 고군분투하다 보니 산티아고 여정의 1/3이 지났다. 어느덧 상처도 낫고 가족에 대한 걱정도 느슨해지고 보니 이제야 길이 보이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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