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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제75호>산티아고 길을 걷다 1 _ 김승효(회원)

by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2019. 10. 15.

내가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도시들을 두루두루 돌아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지금은 언제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아득하기만 하다. 아득한 기억들을 뒤돌려 여행기를 쓰려고 보니 머릿속이 깜깜하다. 그래도 다녀온 여행을 이렇게 기억하고 남길 수 있도록 지면을 배려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이다.

여행 가기 전에 숨지기의 응원 배웅을 받았다. 다녀온 후에도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마중을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서라고 말하면 속 보이는 일이겠지만 아마도 글로써 내 작은 경험을 나누는 일은 이곳에서가 유일할 것이니 최선을 다해 전해보려고 한다.

 

요 며칠 동안 시간을 거슬러 산티아고 여행을 떠올리고 있다. ‘가기 전에 어떻게 마음을 먹었더라? 어떻게 준비를 했더라? 여행 중에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내가 본 광경이 어느 길에 있었더라? 성당이 아주 많았고 어느 곳에서는 유난히 경건함과 가슴 벅참을 있었는데 그곳이 어디였더라? 그때 내 마음이 왜 그랬더라?’ 등등... 참고로 난 불교신자다.

여행은 할 때보다 준비할 때 설레는 마음이 크다고들 한다. 그런데 난 설레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다. 아이를 둔 엄마이고 아내이고 직장인이었으니 설레는 기쁨보다는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걱정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더 가득했던 것 같다.

 

올해 1월로 기억한다. 선영이가 안식년 휴가로 산티아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나에게 동행을 청했다. 나는 그녀의 권유에 어떤 마음에서인지 앞뒤 없이 그 자리에서 그러자 했다. 동행자가 선영이여서 그랬음에 당연하다.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평소에 막연하게나마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기에 무모할 수도 있었지만 일을 저질렀다. 둘이서 의기투합이 되었으니 실행에 옮기는 일은 일사천리였다. 일단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선배의 도움으로 항공권을 예매하고, 다음으로 배낭을 구입하고... 다른 모든 일들을 제쳐주더라도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항공권은 예매했고 그 당시, 4월에 떠나는 것이니 언제쯤 그 시간이 오려나.’하고 느슨한 마음으로 지냈는데 시간이란 놈은 멈추지도 더디 가지도 않으니 금세 갈 때가 임박했다. 그때서야 ! 산티아고 갈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했었다. 미리 구입해 둔 배낭 위에 그 외에 가져가야 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방 한편에 쌓아놓는 것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작년에 큰 아이가 고3이었다. 아이가 고3이었으니 내가 아무리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로 살고자 노력한다 해도 그것과 다른 차원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심한 마음고생은 내 몫이었던 것이고 아이는 시종일관 스스로 선택한 길로 나아갔고 결국 외국의 대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정하고 결과를 받고 보니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사라졌지만 또다시 집을 떠나는 아이생각에 다른 종류의 걱정거리가 그 마음을 대신하는 걸 보면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큰 아이 출국날짜가 42일이고 이틀 후인 4일에 내가 출국하는 날이어서 더욱 정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올해 고등학생이 된 작은아이는 나의 출국 일에 수학여행을 가야 했다. 어쩌다가 이리되었는지... 그러니 어찌하랴. 이미 정해진 일정이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수밖에!!!

아이를 멀리 보내야 하니 준비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내 여행 준비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이사이에도 오랫동안 남편과 작은아이 둘이서 지내야 하니 집안 살림을 단속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전기검침일, 수도검침일, 세탁기 돌리는 방법, 내가 없는 동안 큰아이에게 챙겨서 보내야 할 것들, 고등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작은아이 챙겨야 할 것들 등등... 집안 곳곳에 꼼꼼하게 내용을 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것으로 나의 부재를 최소화하려고 무던히도 애쓰는 중에 가야 할 때가 되었다.

 

드디어 큰아이가 새로운 꿈을 향해 길을 나섰고, 이틀 후에 작은아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고, 나는 전날 늦은 밤까지 꾸린 커다란 배낭을 메고 스페인을 향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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