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칭. 사전적 의미로는 ‘경멸하여 일컬음, 또는 그렇게 부르는 말’
친노에서 문파로 이제는 뉴명으로 언론(유튜버)의 갈라치기에 올라 앉아
온갖 멸칭을 쓰는‘사람’들이 민주를 ‘죽자고’ 외친다.
쎈 멸칭을 쓰며 선명성을 ‘죽어라’ 뽐낸다.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스스로 사는 ‘사람’들일까?
좀비 영화가 성행하는 시대.
스스로 좀비가 되는 ‘사람’들이 민주를 외친다.
광장의 주권자가 살린 민주주의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사람들의 소리를, 아우성을 한 입으로 삼키고
이론가, 이상가, 사상가, 운동가 부류와 실천가, 정치인 부류로 납작하게 갈라치며
‘자기애적 포용 ’ 을 설교하는 이상한 나라,
‘포용’ 정치인 대통령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좀비공화국.
영화 오징어 게임 대사가 떠오른다.
“이러다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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